[신동욱 앵커의 시선] 연탄

신동욱 기자 | 2023.12.06 21:51

아버지는 연탄입니다. '숨구멍이 불구멍이지. 그 집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 한숨을 불길로 뿜어 올리지. 헉헉대던 불구멍 탓에 아비는 쉬이 부서지지. 갈 때 되면 그제야 낮달처럼 창백해지지.'

연탄은 어머니입니다. '새벽마다 어린 우리들 잠 깨울까 봐 조심스럽게 연탄불 가는 소리… 일어나기 싫어 모르는 척하고 듣고 있던, 어머니의 소리였다.' 그 소리는 자식들에게 아린 부끄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나는 알면서도 잠자는 척 이불을 덮어썼다. 빈말로 어머니를 속였다. 왜 저를 깨우시지 않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연탄 배달하는 어머니를 따라 나서 얼굴에 검댕을 묻히는 게 창피해 툴툴거렸다고 했지요. 문학평론가 나민애 교수가 기억하는 연탄에도 가난이 스며 있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아버지 나태주 시인이 얇은 월급봉투를 들고 오면, 어머니는 늘 쌀과 연탄부터 들여놓았습니다. 그 시절 연탄은 먹을 양식만큼이나 소중했지요. 지난해 늦가을 80대 노인이 연탄 나눔 공동체 '연탄은행'에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날씨가 차가워져서 고민입니다. 하루를 나려면 연탄 여섯 장이 필요한데, 염치없지만 저희 집 연탄창고가 텅 비었습니다."

지금도 연탄은 낮은 곳을 온기로 덥히고 어두운 곳을 희망으로 밝힙니다. '밥은 하늘이고 연탄은 땅입니다.' 

'얼굴 없는 연탄 천사'가 올겨울에도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충북 제천시청에 해마다 2만 장씩 맡기기를 21년째입니다. 판매업체의 연탄 보관증과 함께 우편으로 온 손글씨도 20년 한결같이 짧고 담담합니다.

제천시가 판매업체에 수소문했지만 "이름 알리기를 원치 않고, 조용히 돕고 싶다"는 뜻만 전해 들었다고 합니다. 갈수록 줄어들긴 하지만 지금도 7만4천 가구가 연탄을 땝니다. 한 장이 9백 원 안팎인데, 난로 하나만 지펴도 겨울을 나려면 8, 9백 장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연탄공장들이 잇따라 문을 닫고 생산비, 배달비가 오르면서 지역에 따라 천 2백 원까지 연탄값이 치솟았습니다. 덩달아 연탄 기부의 온기마저 연탄재처럼 식어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연탄은행에 330만 장이 들어왔던 게 올해는 절반도 안 되는 백 60만 장에 그쳤습니다. 제천 천사의 손길이 그래서 더 따뜻하고 고맙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고 외쳤던 시인은 '연탄 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풍경'이 제일 아름답다고 했지요.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어찌 연탄뿐이겠습니까. 나눔과 베풂은 가진 것 많고 적음과 상관이 없습니다. 기댈 어깨를 슬며시 내주는 작은 마음 하나면 충분합니다. 그래서 비록 사라져 가는 풍경이지만 이맘 때면 늘 연탄 한 장을 떠올립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갈수록 차갑게 변해져서 그런지도 모를 일이지요.

12월 6일 앵커의 시선은 '연탄' 이었습니다.

뉴스제보
이메일(tvchosun@chosun.com)
카카오톡(TV조선제보)
전화(1661-0190)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