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Talk] 직속상관 감옥 보낸 한동훈의 공천 초식
김정우 기자 | 2023.12.29 15:23
'국정원 특활비 불법 수수' 혐의였고, 당시 수사 라인엔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 있었다. 그 위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었다.
MB 청와대에서 특활비가 오가던 2011년, 민정2비서관은 김진모였고 그 바로 아래 선임행정관은 한동훈이었다.
김진모-한동훈 두 사람의 '직속' 인연은 이후 검찰로도 이어졌다. 2013년 한동훈 대검 정책기획과장 시절 직속상관이 김진모 대검 기획조정부장이었다.
그러다 탄핵과 적폐수사 정국이 몰아쳤고, '두 차례 모셨던' 직속 선배를 수사한 한동훈은 거침 없었다. 당시 수사 상황을 잘 아는 인사는 "검찰이 특활비를 수사한다 하니 국정원이 '김진모'란 인물을 가장 먼저 한동훈에 던져본 것"이라며 "과연 자기 식구까지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있을지 떠본 건데, 한동훈에겐 그 수가 먹히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수사 물꼬를 튼 윤석열(검사장)-한동훈(3차장)-송경호(특수2부장) 특수라인은 결국 두 달 뒤 MB까지 구속했다. 특히 MB 청와대에서 선임행정관으로 근무한 한동훈 입장에선 직속상관인 비서관과 대통령까지 감옥에 보낸 셈이다.
'한동훈 비대위'를 놓고 국민의힘이 갑론을박 난상토론을 벌이던 지난 19일,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장에서 충북 청주 서원당협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한 김진모는 한동훈에 대해 "두 번이나 일해봐서 아는데, 강성으로 장관직을 수행할 수밖에 없어서 그렇지 부드럽게 변신할 수 있고 유능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본인을 수사해 감옥까지 보낸 직속 후배를 지지하는 발언을 한 연유가 궁금해 물어봤다.
그는 "당초 발언할 계획은 없었지만, 함께 MB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박정하 의원이 사회를 보다 발언해보라 해서 한 것"이라며 "위기의 당이 기왕 베팅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감각과 능력과 스타일과 성실함이 겸비된 엘리트 정치인에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였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한동훈이 김진모와 친하다고 해서 공천 줄 사람이 아니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선배를 감옥에도 넣는데 무슨 공천을 주냐'는 것.
서운한 감정은 없었느냐는 물음엔 "수사를 받던 당시 윗선에 대한 추궁도 당했고 감정적으론 공감이나 찬성을 할 순 없었지만, 한동훈에 대한 '인간적 신뢰'가 무너져내리진 않았다"고 했다.
실형이 확정되고 난 뒤 '후배 한동훈'은 미안한 마음을 표했고, '선배 김진모'는 다 받아들이며 이해했다고 한다. 원칙대로 수사하고 처벌까지 마무리한 뒤 개인적 인연의 아쉬움을 달래며 앙금을 풀어냈다는 스토리다.
■'서태지'에 담긴 경고
비대위원장을 수락한 한동훈은 첫 연설에서 서태지를 차용했다.
'동료 시민'과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빛나는 승리를 가져다줄 '사람'과 '때'를 말하면서 '우리 모두'와 '지금'을 강조했다.
바로 지금이 유일한 순간이며 바로 여기가 유일한 장소란 서태지의 노랫말을 정당 정치에 적용하는 과감함을 보였다.
세상은 빨리 돌아가고 있고 시간은 멈춰 기다리지 않으며 사람들은 머리 위로 뛰어다니는데 방 한구석에 앉아 쉽게 인생을 얘기하려 하지 말라는 전제가 담긴 걸로 풀이된다.
자신을 향한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을 임재범을 인용해 연설했던 2년 반 전 이준석보다 더욱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메시지로도 읽힌다.
연설문에 서태지를 녹여낸 가장 큰 이유는 서태지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인 한동훈 본인이 X세대란 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여권의 최대 약점인 70년대생 40~50대의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70년대에 태어나 90년대 학번으로 졸업한 X세대는 그동안 보수여권에겐 난공불락 철옹성이었다. 오죽했으면 지난 대선 때 2030 지지를 끌어안은 이준석은 4050 세대를 얻기 위해 이른바 '세대포위론'이란 개념까지 동원해야 했다.
처칠과 케네디, 링컨만 들려오던 여의도에서 서태지의 등판은 '한동훈식 정치'의 지향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나타내는 '메타포'이자 내부를 향한 일종의 '경고'로 보인다. 이미 변화된 여의도 문법을 제대로 이해 못하는 이들은 '수십년째 같은 영수증만 내미는' 86 운동권과 함께 청산될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한동훈 앞엔 비대위 출범 후 용산과의 관계설정, 이준석 신당, 쌍특검 거부권 등 여러 시험대가 있다. 그러나 총선 100여일 전 추대된 비대위원장에게 주어진 지상과제는 역시 첫째도 공천, 둘째도 공천이다. 당내 반발을 극복하고 공천개혁을 이뤄낼지 여부가 결국 '조선제일검'에서 '소수여당' 당수가 된 그의 정치적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
'되고 싶은 건 없고 하고 싶은 건 참 많았다'던 그는 '정교하고 박력있는 리더십'을 앞세워 "무기력 속에 안주하거나 계산하고 몸사리지 말고 그때 그때 바로 바로 반응하고 바꾸자"고 했다. "국민의힘보다 국민이 우선"이라며 '선당후사' 대신 '선민후사'를 실천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총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한동훈의 초식
높은 지지로 추대된 비대위원장이 본인의 출마를 선제적으로 포기하는 순간, 공천 개혁 과정에 활용할 초식(招式)의 폭은 상당히 넓어진다. 그가 휘두를 공천 칼바람에 무턱대고 저항을 했다간 득보다 실이 훨씬 클 거란 판단 때문이다.
원내 친윤 그룹의 한 핵심 인사는 "대통령과 비대위원장이 기성 정치권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개혁에 대한 입장은 큰 차이가 없다"며 "여의도는 개혁의 '대상'이지 '주체'가 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고하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한동훈이란 이름을 내걸고 강하게 당내 개혁 드라이브를 걸면 그 누구도 쉽게 피할 순 없을 것"이라며 "거기엔 나도 포함된다"고 했다.
이전 김기현 지도부 체제에서 시도하는 공천 개혁과 한동훈 비대위가 밀어붙일 개혁은 그 강도와 압박의 차원이 완전히 다를 것이란 얘기다. 그래서인지 비대위 구성 직전까지 영남 주류가 중심이 된 당내 기득권 다수는 '정치를 모른다'는 이유로 그의 등판을 물밑에서 저지해왔다.
'한동훈의 개혁'은 결국 핵심 친윤 그룹을 포함한 당내 주류를 얼마나 개편하고 또 재편할 수 있을지에 달렸다. 이는 공천 결과로 1차 평가를, 선거 결과로 최종 심판을 받게 된다.
대선 전후 소위 '윤핵관'으로 불리던 사람은 장제원·권성동·윤한홍·이철규 4명이었지만, 최근 가장 '핵심'으로 꼽히는 실세는 이철규·박성민 두 사람이다. 한 명은 초반부터 '한동훈 비대위'의 필요성을 여러 의원들에게 역설하며 '윤심'을 전하려 했다 하고, 다른 한 명은 순방중인 대통령이 밤새 전화를 스무 번이나 했지만 자신이 못 받았다는 자랑을 하고 다녔다 한다.
직속상관으로 모신 선배를 가차없이 수사해 구속까지 시킨 검사가 법무장관을 거쳐 여의도에 입성했다. '동료 시민들(fellow citizens)'이 그에게 기대하는 바는 명료하다.
'여의도 사투리'를 벗어난 문법으로 낡은 정치 청산에 앞장서는 것은 물론, 정교하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능력을 스스로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답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정권과 당권에 가까이 서서 구태(舊態)를 답습해온 이들부터 물갈이 할 때다. '9회말 풀카운트'에 대타로 오른 그에겐 바로 지금이 유일한 순간이며 장소다.
뉴스제보
이메일(tvchosun@chosun.com)
카카오톡(TV조선제보)
전화(1661-0190)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