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칼럼 오늘] 깜깜한 세상

윤정호 기자 | 2024.03.05 21:52

"올해 국민학교에 들어가는 어린이들은 4월 초하룻날 어머니와 누나의 손을 붙잡고 처음으로 교문에 들어섰습니다."

교모를 쓰고 이름표를 붙인 아이들이 잔뜩 긴장했습니다. 선생님들이 이름 부르는 소리를 놓칠세라 귀를 쫑긋합니다.

서울 초등학교 여든여덟 곳 입학생이 3만6천 명에 이르렀지요. 학교당 400명이 넘었습니다.

그 시절 선생님을 처음 뵌 날 풍경입니다.

'입학식엔 코 닦을 손수건을 꼭 달고 오너라. 선생님 말씀을 듣고 나도 모르게 코를 쓱 닦았다.'

요즘 어린이가 예비 소집 날 엄마랑 꽃단장하고 찾아간 학교는 텅 비었습니다.

1960년대 광주 서석초등학교는 전교생이 만 명을 넘었습니다. 4부제까지 하느라 운동장에서도 수업을 했습니다.

2007년 이회창 대통령 후보가 찾아가 야구부 어린이들과 어울렸습니다. 그가 전근 온 아버지를 따라와 다녔던 모교입니다. 3학년 이정후 어린이가 야구부에 들어가 뛸 때였지요.

백28년 역사를 지닌 서석초는 올해 입학생이 일곱 명에 그쳐 폐교 위기에 처했습니다.

텅 빈 복도를 걸어 교실로 가는 어린이의 뒷모습이 쓸쓸합니다. 어제 군위군 부계초등학교에서 홀로 입학식을 마친 어린이입니다.

선생님과 단둘이 마주앉아 첫 수업을 합니다. 이 학교는 한 학년이 예닐곱 명에 머물다 입학생을 딱 한 명 받았습니다. 그나마 조금 낫다고 해야 할까요.

올해 신입생 없는 초등학교가 백 쉰일곱 곳에 이릅니다.

갓 입학한 아이들이 교실을 울리는 목소리만큼 살갑고 싱그러운 소리가 또 있을까요.

'1학년 꼬마들은 목청도 좋지. 아침부터 시간마다 온 삼월 다 가도록, 저요! 저요! 꽃샘추위야 오건 말건, 저요! 저요!'

씩씩한 목청으로 다투어 손을 들고,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선생님을 쳐다보고, 휘파람새처럼 재잘거리다 까르르 웃는 아이들 앞에서, 꽃샘추위인들 맥을 추겠습니까.

어린이가 걸어가는 부계초동학교 복도 벽, 아이들의 동시가 눈을 붙잡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사라지면 나의 심정은 어떨까. 이 세상이 깜깜해지면 난 갈 곳이 없겠지?'

3월 5일 앵커칼럼 오늘 '깜깜한 세상'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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