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칼럼 오늘] 복숭아 아이스 티 한 잔
윤정호 기자 | 2024.07.26 21:51
귀가하던 시인이, 아파트 두 층 아랫집 아저씨와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아저씨는 자기 집보다 한 층 위에서 내려 계단을 내려갑니다. 자기 집 앞에서 내리면, 함께 탔던 모기들도 우르르 같이 내리기 때문이랍니다.
그가 충고했습니다. '선생도 그렇게 해보시라.' 그 뒤로 시인은 '나쁜 습관'이 들었답니다.
'나는 모기가 많은 여름날이면, 부러 그 집 앞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려서, 두 층이나 걸어 올라간다.'
서글프게 우스운, 우리네 이웃의 우화입니다.
번갈아 퍼붓는 폭염과 폭우에 다들 녹초가 된 이즈음입니다. 어느 집 앞에서, 모기도 달아날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불어왔습니다.
서울 광진구 카페에 음료 둘을 보내달라는 주문이 왔습니다.
"복숭아 아이스 티 하나는 기사님 드리세요."
주인은, 전표에 하트를 그리고 '감동'이라고 적어 보냈습니다. 배달 기사도 아이스 티를 몇 모금 마시고 사진을 찍어 전했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문 앞, '작지만 큰 배려'는 정작, 단절과 고립의 코로나 시대에 넘쳐났습니다.
아파트 주민이 무인 택배함에 내놓았던 아이스 박스입니다. 얼음물, 비타민 음료, 요구르트, 얼음 젤리가 가득했습니다. 문 앞에 바구니째 마스크를 내놓고 써 붙였습니다.
"늦게까지 고생하시는데, 조그만 마음이에요."
코로나의 벽이 사라진 요즘엔 도리어 뜸해서, 어느 집 앞 복숭아 향이 더 상쾌하게 번져옵니다.
어릴 적 먹구름에 어둑한 여름 낮, 운동장 저 끝에서 교실을 향해 달려오던 비가 생각납니다. 모래흙을 진한 갈색으로 적셔 오더니 코끝에 훅 끼쳤던 흙냄새가 그렇게 상쾌했지요. 뜨거운 대지가 식으며 피어올라, 마음을 평온하게 어루만지는 '페트리코' 향입니다.
장필순이 노래로 썼습니다.
'세상의 소음 속에서 울리는 실로폰, 칠흑의 하늘가에는 어느새 무지개…'
아직 버텨야 할 여름날들이 아득합니다. 온통 미움과 노여움, 집착과 탐욕으로 질척입니다. 나 하나만이라도, 나부터 먼저 꽃피는 마음들이 모여, 이 음울한 세상을 보송보송 말려주기를 소원합니다.
7월 26일 앵커칼럼 오늘 '복숭아 아이스 티 한 잔'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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