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Talk] '상생 못한다' 결국 판 엎은 배민·쿠팡

송병철 기자 | 2024.11.10 14:26

107일을 달려온 배달플랫폼-입점업체 상생협의체 논의가 사실상 실패했다. 시장 개입을 최소화한다는 윤석열 정부의 기조에 맞춰 자율 규제로 논의를 시작했지만 쓴맛만 보고 끝났다.

협의체 논의가 실패하자 정부 책임론이 나왔다. 이도 맞는 말이지만 실제 칼자루를 쥔 건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측이었다. '상생협의체'라는 말이 무색하게 상생 의지가 없었다는 게 드러났다. 스스로 기회를 걷어찬 이들에게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애초 상생의지 없었던 배민
시작은 7월 23일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임위원을 지낸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를 위원장으로 하고 정부 측과 배달 플랫폼 측, 입점업체 측이 한자리에 모였다.

불길한 조짐은 회의 전부터 시작됐다. 상생협의체 첫 회의를 앞두고 배달의민족이 수수료를 6.8%에서 9.8%로 올리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도 이런 행태에 "상당히 당황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첫 회의가 끝난 뒤에도 취재진을 만난 함윤식 우아한형제들 부사장은 수수료 인상을 철회할 수 있냐는 질문에 "어려울 것 같다. 공정 경쟁이 되지 않는 시장이라…."라고 답했다.

여기서 읽을 수 있는 건 2가지다. 첫째는 수수료와 관련해서 상생할 의지가 없다는 것, 둘째는 쿠팡이츠를 물고 늘어진다는 것. 상생협의체가 10차 회의를 끝내고 공개한 자료를 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조삼모사' 상생안
배민의 상생안은 거래액을 따져 2.0~7.8% 범위로 수수료를 차등하자는 방안이다. 5차 회의에서 처음 나왔다. 하지만 배달비를 500원가량을 올린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렇게 되면 수수료 인하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한 입점업체 관계자는 "사실상 아무런 효과가 없는 방안"이라며 "애초에 상생의지가 보이지 않았다"라고 반응했다.

여기에다 쿠팡이츠도 이런 안을 쿠팡이츠도 동일하게 시행한다는 걸 조건을 덧붙였다. 배민은 시장 점유율을 60%가량 갖고 있는 1위 사업자이면서 점유율 20% 대인 쿠팡을 계속 물어지고 있다. 배민 측은 쿠팡이 거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시장에서 성장하고 있어 경쟁에서는 쿠팡이 우위라고 변명한다.

하지만 배민의 모회사인 딜리버리히어로의 자산은 15조 원가량이고, 쿠팡이츠의 모회사인 쿠팡의 자산도 17조 원으로 비슷한 수준이다. 오히려 딜리버리히어로는 40개국 배달시장에 진출한 상황으로 사업 경험이나 규모 면에서 쿠팡을 앞서고 있다.
 

 

 상생의지 없기는 마찬가지, 쿠팡이츠
쿠팡이 처음 제시한 안은 처음엔 솔깃했다. 수수료를 현행 9.8%에서 5%로 내린다는 게 골자다. 입점업체 측이 제시한 5%와 동일하다. 하지만 조건이 붙었다. 배달기사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 입점업체와 배달기사 단체가 결정하라는 조건이었다.

이 말을 해석하면 그동안 쿠팡이츠가 부담해온 배달기사 비용을 내지 않겠다는 뜻이다. 입점업체와 배달기사 단체가 정하라는 건 사실상 점주들이 배달비를 부담하라는 의미다. 본인들이 '무료배달'을 내세워 멤버십 혜택을 주고 있으면서 비용은 부담하지 않겠다는 무책임한 방안이다. 공익위원과 입점업체 측은 당연히 반대했다.

10차 회의 때는 배민과 같은 차등 수수료로 선회했다. 범위는 2.0%에서 9.5%로, 거래액 상위 50% 가게에는 할증을 붙이다는 조건이다. 기본거리 1.5km 초과 시 100m당 100원을 붙이고, 악천후에도 약 1000원을 붙이겠다는 내용이다.

애초 할증 제도의 취지는 수요를 분산시키거나 형평성을 보완할 때 도입한다. 심야 택시에 할증을 붙여서 승객의 수요를 흩트리거나 사고가 많은 차에 보험료를 더 물리는 식이다. 줄어든 이익을 보완하기 위한 할증은 도입할 필요가 없다.
 

 

 배민을 빛나게 한 쿠팡이츠
여러 참석자를 통해 들어본 공통된 말은 "쿠팡이 배민보다 소극적이다"라는 것이다. 결과만 놓고 보면 배민이나 쿠팡이나 오십 보 백 보이나 참석자들이 느낀 점에는 분명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배민은 5차 회의에서 처음 상생안을 내놨다. 또 중재 원칙에 더 근접한 것도 배민이었다. 쿠팡이츠는 8차 회의가 되어서야 '수수료 5%+배달비 전가' 안을 내놨고, 마지막 회의가 된다 만다 하는 10차 회의 때 차등 수수료로 마음을 바꿨다. 이런 행태 때문에 사실은 도긴개긴이지만 쿠팡이츠가 배민보다 박한 평가를 받고 있다.

공익위원들이 10차 회의에서 쿠팡이츠 측에 "새로운 상생안을 가져오라"라고 한 것도 이런 행태를 반영한다. 될까, 만약 내기를 한다면 아니올시다에 걸겠다.
 

 

 배달비 지원해야 하나
잠시 다른 얘기를 하자면 내년 정부는 영세 자영업자의 배달비와 택배비를 지원한다. 연 매출이 1억 400만 원 이하인 67만 9000명에 연 30만 원을 지급한다.

다들 고개를 갸웃했다. 자영업자들은 물론 30만 원을 받으면 그만큼 부담이 줄긴 하겠지만 어차피 배달 플랫폼 등에 들어갈 돈이라며 의문을 표시했다. 총예산 2037억 원이다. 차라리 예산을 더 늘려서 수수료가 낮은 공공 배달앱에 대대적이 할인행사를 하는 게 시장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애초에 배달비는 소비자가 부담하는 게 맞다. 지금 무료배달이라곤 하지만 최소 주문액이 적어야 1만 원 이상이다. 최소 주문액을 맞추기 위해 처음 시키려던 음식 외에 추가로 더 주문하는 사례도 허다하다. 배달비를 소비자가 부담하게 되면 최소 주문액은 말 그대로 최소로 줄어들어 최종 부담으로 따지면 점주, 소비자 모두 이익을 볼 수도 있다.
 

 

 늑대 피하려다 호랑이 만날까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제 정부의 시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자율 규제에 실패했으니 강제 규제로 갈 수밖에 없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에 접수된 배달앱 관련 조사에 속도가 붙게 되고, 그렇게 되면 사업 모델에도 변화가 생기는 건 불가피하다.

여기에 관련 입법도 유력하게 검토될 수밖에 없다. 현재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 김남근 의원이 수수료 상한제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이 법이 통과되면 현재 신용카드 수수료처럼 상한이 생기게 되고, 매년 수수료가 공개돼 압박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상한을 얼마로 정할지부터 논란이 될 수 있고, 정부가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지적도 넘어야 한다. 또 수수료 대신 배달비, 광고비 등을 올리는 풍선효과도 막을 수 있도록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어쨌든 배달 플랫폼들은 늑대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날 수 있는 상황이다. 자율 규제라는 기회를 걷어차버린 무게를 얼마로 책정할지는 이제 정부의 판단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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