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칼럼 오늘] 배, 산을 오르다
윤정호 기자 | 2025.01.10 21:52
"당신은 산으로 가자고 했지요. 나는 바다를 동경했어요… 하지만 침묵의 역설에 빠져 길을 잃었지요."
두 사람은 서로 결정을 맡긴 채 둘 다 원치 않은 곳으로 향합니다.
"오, 그림자에 홀린 우리는 '애빌린의 꿈'에 올라타 달리고 있어요."
미국 경영학자 제리 하비가 텍사스 처가에 갔습니다. 장인이 애빌린에 가서 외식을 하자고 합니다. 85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이고, 길은 엉망인 데다, 차 에어컨도 고장 났습니다. 하비와 가족들은 모두 가고 싶어한다고 생각해 따라 나섭니다. 음식까지 형편없는 고생길을 다녀왔더니 다들 원치 않았답니다.
사공이 많아서가 아니라 사공들이 줏대가 없어서, 배가 산으로 가는 경우입니다.
집단 사고에 함몰돼 줄줄이 망하는 길로 나서는 바보들의 행진, '애빌린의 역설' 입니다.
공수처법 표결 때 금태섭 민주당 의원이 당론과 달리 기권 표를 던졌습니다. 민주당은 그를 징계해 탈당의 길로 내몰았습니다.
국민의힘이 바른말을 쏟아냈습니다.
"민주당에 민주가 없구나라고 하는…그런 충격을 받았습니다."
"국회의원의 양심에 대한 징계" "윤미향 비판하면 금태섭 꼴 된다는 협박"이라고들 했지요.
두 특검법 재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진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에게 권성동 원내대표가 권유했답니다.
"같은 당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나… 탈당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라고…"
의원은 당론을 존중할 필요가 있지만 반드시 따를 의무는 없습니다. 국회법도 규정합니다.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얽매이지 않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
국민의힘은 '산으로 가면 안 된다'는 사공한테서 노를 뺐겠다고 나선 격입니다.
친윤 의원이 청년 조직 '백골단'의 국회 기자회견을 주선하는 어이없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백골단이 뭔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겠지요.
'애빌린의 역설'이 지배하는 획일적 조직이라면 그리 놀랍지도 않은 일입니다. 다른 소리는 아예 꺼내지도 말라는 침묵의 행렬, 나중에 이런 말이나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 길이 아닌가 보네.'
1월 10일 앵커칼럼 오늘 '배, 산을 오르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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