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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칼럼 오늘] 가족 회사, 선거관리위원회

등록 2024.05.01 21:51

수정 2024.05.01 21:54

"15년 먹은 맛을 잊을 수는 없으니까."

15년 동안 갇혀 있다 풀려난 오대수가 중국집을 돌아다니며 만두 냄새를 맡습니다. 코로 추적해 감금 장소를 찾아냅니다.

문호 찰스 디킨스는 평생 접착 풀 냄새를 싫어했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버림 받아 병 공장에서 라벨을 붙이던 고통이 되살아나기 때문이었습니다.

후각은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워낙 예민해서 쉽게 마비되기도 합니다. '후각 피로' 현상입니다.

공자도 '절인 생선 가게에 들어가면 퀴퀴한 냄새를 맡다가 곧 느끼지 못한다'고 했지요. 시궁창에 빠지면 시궁창 냄새를 못 맡는 법입니다.

중앙선관위와 전국 선관위에서 풍겨 나오는 악취가 끔찍합니다. 지난 10년, 2백 아흔한 차례 경력직 채용에서 드러난 비리와 규정 위반이 천 2백 건을 넘습니다. 온전한 채용이 한 번도 없습니다.

장관급인 중앙선관위 전 사무총장과 차관급 사무차장을 비롯한 고위직과 중간 관리자 스물일곱 명은 검찰 수사를 받게 됐습니다. 다른 사무총장을 포함해 스물두 명의 감사원 조사 자료도 검찰에 넘겨졌습니다. 4급 이상이 3백 쉰 명 선인 조직에서 비리 혐의를 받는 전·현직이 마흔아홉 명에 이르는 겁니다.

간부가 인사 담당자들에게 자녀 채용을 청탁하면 면접위원을 바꾸거나 합격 순위를 조작했다고 합니다. 사무총장 딸의 점수 칸을 면접관들이 비워두면 담당자가 높은 점수를 써넣었습니다. 채용과 전보, 관사까지 특별 대우를 받은 사무총장 아들은, 직원들이 '세자'라고 불렀습니다.

시궁창이 따로 없습니다. 악취에 마비된 듯 그들만의 천국에서, 대를 이어 조직적인 비리를 벌였습니다.

'냄새가 냄새를 만나 집단으로 몰려다니다 보면, 때로 치명적인 독… 마비된 감각으로 비틀비틀 걸어간다.'

선관위는 지난해 채용 비리가 불거지자 자체 감사를 고집해 네 명만 수사 의뢰했습니다. 사무총장과 차장을 면직 처리해 공직 재임용 기회와 연금을 챙겨줬습니다. 그 무렵 중앙선관위원장이 특혜 채용 대책회의를 주재했습니다. 위원장 맞은편 벽에 '엄정'과 '공정'을 다짐하는 글귀가 걸려 있습니다.

5월 1일 앵커칼럼 오늘 '가족 회사, 선거관리위원회'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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