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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 일기] 유지원 '미술 사는 이야기'

등록 2024.05.08 21:11

수정 2024.05.09 09:33

[한 문장 일기] 유지원 '미술 사는 이야기'

/마티 제공(예스24 캡처)

 
"작품과 함께 산다는 것은 같은 공간에 머물면서 손과 눈으로 그것을 만지고, 더 알아가고, 그것만의 고유한 특징과 위치를 발견해가는 과정이다. 이는 소유자가 사물에 의미를 부과하는 일방적인 관계에 그치지 않는데, 생활공간으로 들어온 작품은 동거인의 동선과 시선을 재조직하기에 이른다. (…) 다양한 재료의 조각과 상상의 여지를 남기는 드로잉이 일상을 침범할 때, 비활성화되어 있던 감각이 순간순간 살아난다."

2010년대 미술계에는 후에 '신생공간'이라 불리게 될 독특한 공간이 등장한다. 주로 공장지대와 시장통, 주택가에 위치한 이 공간은 이제 막 창작을 시작한 작가들이 스스로 개척해낸 곳이었다. 그들에게는 만든 것을 선보이고 관람객과 소통할 수 있는 장소가 절실했다.

저자가 미술을 사들이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용돈을 조금 아끼면 어렵지 않게 구매할 수 있었던 작은 조각과 전시 포스터, 스티커에 이르기까지, 누군가의 눈에는 대단할 것 없어 보일 컬렉션은 저자의 생활 공간을 시나브로 재구축한다. 전시를 감상하는 방식도 자연히 달라졌다. 스스로의 생활 영역에 작품이 틈입할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작품의 면모가 꽤나 달리 보였던 탓이다.

그러니 저자에게 미술을 사는 일은 취향을 발명하는 일이자 한 시절을 눈에 보이는 곳에 단단히 매어두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왜 그것이 아니라 이것이어야만 했는지, 이것과 저것의 모양새와 만듦새가 어떻게 다른지"를 생각하며 스스로의 감각을 고양시켰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역시 창작에 연루되는 일이었다. "창작자의 실천과 행보, 행사의 취지 및 맥락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일. 그리하여 이제 막 창작에 뛰어든 젊은 작가들을 뜨겁게 응원하는 일. 미술이라는 생태계의 한구석을 조금이나마 떠받치는 일.

창작자와 비평가, 관람객의 구별 없이 미술에 대해 쓰고 말했던 그 시절을 돌아보며 저자는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다만 "동료의 이야기를 들어줄 시간과 마음", 그리고 "새로운 연결의 지도"를 만드는 일이라고. 그렇게 사는(buy) 일은 사는(live) 일로 이어진다.

 

[한 문장 일기] 유지원 '미술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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