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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호 앵커칼럼] 골대 옮기기

  • 등록: 2016.12.01 20:42

축구 선수들이 골대를 옮깁니다. 팀을 둘로 나눠 미니 연습 경기를 하려는 겁니다. 골대 옮기기는 훈련에 앞선 워밍업도 겸합니다.

홍명보 감독은 골대를 까다롭게 관리했습니다. “골대가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골키퍼를 비롯한 선수들의 위치 감각에 혼란이 온다”고 했지요. 제 위치에 바로선 골대는 모든 경기의 기본입니다. 

슛을 하려는데 상대방 골대가 딴 데로 가버렸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리로 가서 또 슛을 하려는데 상대팀이 또 옮겨버립니다. 이런 일이 거듭되면 경기를 할 수가 없습니다. 

논리학에 ‘골대 옮기기(Moving the goalposts)’ 라는 게 있습니다. 어떤 쟁점을 매듭짓지 않고 다른 쟁점으로 옮겨가 불리한 논의를 피하려는 술책을 말합니다. 경제학에선 처음에 내건 협상조건을 상대가 받아들이면, 새로운 조건을 내밀어 신뢰를 깨뜨리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래 야당이 계속 골대를 옮기고 있습니다. 거국중립내각을 제안했다가 여당과 대통령이 받자 거둬들입니다. 국회 추천 총리도 거부합니다. 대통령 2선 후퇴는 퇴진으로 바뀌었습니다. 대통령이 물러나겠다니까 대화를 거부하고는 탄핵 일정을 강조합니다. 이래서는 합의는 커녕 협의도 안 됩니다.

게임이론에는 ‘죄수의 딜레마’란 게 있습니다. 죄수 둘이 서로를 믿고 입을 닫으면 아무 처벌도 받지 않는데, 서로를 불신해 입을 열어 둘 다 파멸하는 경우입니다. 둘이 협력해야 할 상황이 여러 차례 반복되면 신뢰를 지키는 쪽이 승리합니다.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입니다. 골대를 옮기기 좋은 종목이 아이스하키입니다. 그래서 상대 공격을 피하려고 골대를 조금만 옮겼다간 페널티 샷을 선언 당합니다. 당장 비박까지 포함한 여당은 탄핵 대신 대통령 4월 퇴진을 당론으로 정했습니다.

야당은 ‘질서 있는 퇴진’에서 ‘무질서한 퇴진’으로 골대를 옮겼다가 페널티 골을 한 방 먹은 셈입니다. 야당이 계속 신뢰와 명분을 잃으면 역풍이 불 수밖에 없습니다.

앵커칼럼 ‘골대 옮기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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