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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취재후 Talk] [리뷰] '기생충'과 황정은

등록 2019.06.15 11:01 / 수정 2019.06.15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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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을 본 일부의 반응은 "가난이 과장됐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기택(송강호) 가족이 사는 집의 생김새, 그리고 홍수 신(scene)이 장르적으로 덧칠된 것이라 생각한다. 쉽게 말해 '요즘 세상에 그렇게 사는 사람이 어디 있냐'는 것이다. 턱을 치켜들어야만 빛을 볼 수 있는 집의 구조와, 내리는 비에 속수무책으로 역류하고 마는 하수구에 대한 묘사가 어쩌면 그런 혐의를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영화적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은 여름철마다 나오는 이재민 뉴스만 봐도 알 수 있다.

고백하자면 처음 황정은의 소설을 읽었을 때 나 역시 비슷한 의문을 품었던 것 같다. 황정은의 소설엔 언제나 '가난한' 이들이 나온다. 함께 슬럼가를 걸으며 값싼 샌드위치를 나누어 먹는 연인, 돈 몇백 원을 아끼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사람들. 단골로 등장하는 배경은 공구 상가다. 그리 유복하게 자라지 못한 나조차 그녀의 글을 읽으며 '이건 좀 비현실적이다' 생각했다. 그러곤 내 생각의 폭력성에 스스로 놀랐다. 누군가의 '현실'을 '비현실'이라 재단한 것이다.

우리가 문학과 영화를 계속 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생득'을 벗어나기 힘들다. 인종, 성별, 성적 지향 등 타고난 조건들이 사고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내 입장과 처지를 벗어나 다른 이의 삶을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문학과 영화는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딛고 선 자리를 벗어나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 보는 것. 불완전하게나마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 책과 영화를 통해서, 우리는 다시 태어나지 않고도 타인의 존재를 감각할 수 있다.

관객수 700만을 넘긴 지금도 포털사이트엔 '기생충'에 관한 온갖 해석과 추정이 넘쳐난다. 영화 속 상징을 퍼즐 풀듯 풀고, 감독의 의도를 짐작해보는 것이 감상의 큰 재미 중 하나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가 엔터테인먼트로만 소비되는 것이 못내 불편하다.

핵심은 영화 바깥에 있다. '기생충'이 누군가의 현실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 그를 통해 다른 삶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 그것이 영화의 확장이요, 예술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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