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전체

[취재후 Talk] '윤석열 사용설명서'① - 미국 '검찰의 전설' 소환한 尹, 왜?

  • 등록: 2021.03.24 10:55

  • 수정: 2021.03.24 11:50

/ 좌: 윤석열 전 검찰총장, 우: 미국 에머스트대 소식지인 에머스트(Amherst) 2011년 겨울호에 실린 로버트 모겐소 전 연방검사장
/ 좌: 윤석열 전 검찰총장, 우: 미국 에머스트대 소식지인 에머스트(Amherst) 2011년 겨울호에 실린 로버트 모겐소 전 연방검사장

"내 싸움으로 최근 법무부에서 두드러지고 있는 편협한 정파성을 후임자가 감내하는데 도움이 됐음 하다."

"진행중인 주요수사를 마무리하기 전엔 사퇴를 거부하는 게 내 소임이자 책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발언이겠거니 여겼다면, 틀렸다. 주인공은 52년전 대통령의 사퇴 요구에 맞섰던 미국 연방검사장이다. 당시 미 대통령은 리처드 닉슨, 연방검사장은 미 '검찰의 전설' 로버트 모겐소(1919~2019년) 뉴욕 남부지검장이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퇴임 직전 이 모겐소 검사장의 일대기를 담은 전기(傳記)를 전국 검찰조직에 배포했다. "그토록 어렵게 지켜왔던 총장 직에서 물러난다"던 그가 남기고 싶었던 또 다른 사퇴의 변(辯)이었던 셈이다.


●52년전 美 강골 검사가 尹의 참고서?


1969년 1월 닉슨 대통령 취임 이후 모겐소 검사장은 백악관으로부터 자진사퇴 아니면 해임이라는 최후통첩을 받았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자리를 비워라는 노골적인 압박이었다. 인사권자인 대통령에 소관부처인 법무부까지 나섰지만, 모겐소 검사장은 이를 정면으로 거부했다.

당시 모겐소 검사장은 사퇴를 거부한 이유로 "진행중인 주요수사를 마무리하는 게 내 소임이자 책무"라고 했다.

그는 훗날 미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한마디로 정리하면 당시 닉슨 행정부가 (검찰을) 정치적으로 만들 것으로 판단했다. 권력을 잡았다고 맘대로 해선 안된다는 것도 정립하고 싶었다"고 했다.

모겐소 검사장은 이듬해인 1970년 1월 사퇴하기 전까지 닉슨 대통령의 대선 후원자에게 수사 예봉을 겨누는 등 집권 1년차 서슬 퍼런 정권과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했다.

법조계 안팎에선 다혈질인 윤 전 총장이 추미애 법무장관 시절 이어진 수사지휘권 발동과 징계 청구 국면 당시 '의외의 평정심'(?)을 유지한 배경에도 '모겐소 학습효과'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법조계 관계자는 24일 "진행중인 주요수사를 놓고 정권과 대척점에 있던 스타 검사의 갑작스런 퇴장이란 측면에서 윤 전 총장이 느낀 부담감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며 "모겐소가 떠난 뒤에도 명성을 이어간 뉴욕 남부 연방검찰청 사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니겠나"고 했다.


●'검찰의 전설', 정계선 조직과 정치자금 동원력 한계


특유의 기개와 집요함으로 미국 검찰내 전설로 자리잡았던 모겐소 검사장이었지만, 사퇴 이후 정계 진출에선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진 못했다.

루즈벨트 정부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헨리 모겐소 주니어의 아들이던 모겐소 전 검사장은 어린 시절부터 정계 거물급 인사와의 인연도 있었다. 하지만, 선거판에선 큰 위력을 발휘하진 못했다.

검사장 자리에서 물러난 지 열달 만인 1970년 11월 열린 뉴욕 주지사 선거 당시 경쟁후보에 밀려 중도낙마했다.

TV토론 등 미디어선거 태동기였던 50년전 미국과 소셜미디어 시대인 지금의 정치상황은 다르지만, 윤 전 총장이 정계 진출 여부에 앞서 모겐소의 시행착오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윤 전 총장이 101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에게 던진 질문도 '정치해도 될까요'였으니 고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며 "지지율을 놓고 좌고우면할 게 아니라 우선 SNS로 현안 관련 목소리를 내며 지지자와 소통하는게 먼저가 아닐까 싶다"고 했다. / 정동권 기자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