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동산에 꽃 캐러 언니 따라갔더니, 솔가지에 걸리어 다홍치마 찢었읍네…"
뒷동산 솔가지에 치마가 찢긴 처자가, 누가 볼세라 황급히 지름길로 내려옵니다. 그런데 마음을 둔 임이 그날따라 하필, 지름길에 나와 풀을 벱니다. 백 년 전 풍경이지만 볼이 얼마나 빨개졌을지 눈에 선합니다.
진화론의 아버지 다윈은 "모든 표정 중에 낯붉힘이 가장 인간적" 이라고 했습니다. 낯붉힘은, 수치심이나 죄의식을 자극받은 지 2초 안에 일어나 감추기가 힘듭니다. 뜨거움을 느끼기도 전에 볼이 달아올라, 다른 사람이 먼저 알아차리곤 하지요.
흑인들도 물론 낯을 붉히지만, 얼굴빛에 가려 잘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합니다.
낯붉힘은 세 살 무렵 시작해, 사춘기에 절정에 올랐다가, 서른다섯 살부터 점점 쇠퇴합니다. 나이 들수록 낯이 두꺼워지는 것이지요.
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위안부 후원금을 빼돌렸던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 받았습니다. 다른 혐의는 무죄가 났지만 핵심 혐의인 횡령죄를 벗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낯을 붉히기는커녕 시종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지요. 법원은, 검찰이 제기한 횡령액 중에 천7백만 원쯤만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죄가 결코 가볍지 않다"고 했습니다. 나머지 횡령 혐의 대부분도, 검찰이 제대로 증명하지 못했거나, 정의연 활동과 관련한 지출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여지를 뒀지요. 법원이 밝혔듯 천7백만 원은 여느 천7백만 원 횡령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엄중합니다.
윤 의원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해 써달라는 국민 기부금으로 갈비를 사먹고 발 마사지숍 비슷한 곳도 갔습니다. 개인 소득세를 내고, 딸에게 수고비를 주고, 홈쇼핑을 했습니다. 법원은 이 파렴치한 짓을 모두 유죄로 판결했습니다. 피해 할머니들은 물론, 수많은 후원자들을 배반하고 기만한 겁니다.
그런데 그는 마치 무죄라도 받은 듯 희희낙락했습니다. 최종심까지 가봐야겠지만, 일단 의원직을 뺏기지 않는 벌금형을 받아서 그랬을까요. 낯의 두께를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을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대뜸 동일시하고 나섰습니다. "검찰과 가짜 뉴스에 똑같이 당하는 나조차 의심했다. 얼마나 억울했겠느냐"고 했습니다. 윤 의원처럼 자신이 결백하다는 얘기인데, 또 번지수를 잘못 찾은 듯 합니다. 윤 의원의 기부금 횡령범죄가 죄도 아니라고 해버린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입니다.
불교 말씀에 "재에 덮인 불씨처럼, 지은 업은 그늘에 숨어 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소금 먹은 소가 물을 켜기 마련' 이라는 말씀이지요.
2월 13일 앵커의 시선은 '얼굴을 붉힌다는 것'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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