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 뮬리너의 제품은 믿을만 했다.
말 안장과 마차 제작으로 입소문을 탔다.
영국우정공사는 1760년 배달용 마차를 주문하면서 관리도 맡겼다.
뮬리너가(家)는 '마차'로 대를 이었다.
마차와 자동차가 도로를 함께 달리던 시절.
후손 헨리 뮬리너는 1897년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를 설립했다.
점점 '말 없는 마차'가 늘어갔고, 자동차 차체에 집중했다.
1915년엔 왕실의 인증을 받았다.
자동차 '코치빌더'로서의 명성은 높아갔다.
1923년 어느날.
벤틀리가 사무실을 찾아왔다.
"3리터 엔진이 있는데, 2인승 차체를 만들 수 있겠소?"
뮬리너와의 관계는 여기서 시작됐다.
1920년대에만 240대가 넘는 차체를 벤틀리에 공급했다.
1952년 '타입 R 컨티넨탈'의 차체 디자인에 직접 참여했다.
플라잉스퍼(1957년)는 뮬리너가 내·외장을 도맡았다.
뮬리너는 벤틀리의 '럭셔리'에 없어선 안 될 존재였다.
롤스로이스-벤틀리는 1959년 뮬리너를 아예 인수했다.
1998년 분할 매각될 때 벤틀리의 사업부로 남았다.
지금도 크루 공장에 사무실과 작업실이 있다.
뮬리너가 선호하는 내장재의 재질이 있다.
모기에게 물린 자국이 없는 북유럽산 황소 가죽.
아프리카산 유칼립투스 나무.
스톤배니어를 위한 석재와 석영석은 인도의 라자스탄과 안드라 프라데시주의 채석장에서 직접 채취한다.
벤틀리도 롤스로이스처럼 본닛 상징물이 있다.
윙드 B를 디자인한 고든 크로스비의 'Icarus'다.
1920년대에는 저작권 문제가 불거질까 우려해 부착하진 않았다.
대신 황동으로 만든 '이카루스'를 소유주에게 줬다.
그러다 1933년 '환희의 여신' 조각가 찰스 사익스에 새로 의뢰했다.
플라잉 B(Flying B)다.
처음 'B' 뒤쪽으로 날개가 하나였다가 한 쌍의 날개로 바뀌었다.
1970년대 보행자 안전법이 강화되면서 사라졌다가 2006년 부활했다.
충돌 때 접혀들어가게 하는 전자장치 덕분이다.
현재는 여섯 번째 디자인이다.
올빼미에서 영감을 받았다.
크리스탈 아크릴로, 내부에 조명이 들어간다.
제작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11주가 걸린다.
지금은 플라잉스퍼에만 '뮬리너 옵션'으로 제공한다.
벤틀리는 뮬리너를 통해 초고가 한정판을 선보이고 있다.
2020년 선보인 바르케타(Barchetta) '바칼라'는 지붕이 없다.
지붕 없는 경주용 자동차를 바르케타라고 부른다.
이탈리아어로 작은 보트다.
벤틀리 100주년을 기념해 12대만 제작했다.
가격은 38억 원이다.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아름다운 호수에서 이름을 따왔다.
2022년엔 바칼라의 후속으로 바투르를 선보였다.
전 세계 18명에게 올해 중순부터 순차적으로 인도한다.
바투르는 인도네시아 발리 킨타마니의 분화구 호수다.
국내 도로에서 하반기쯤 볼 수 있다.
딱 한 대가 배정됐는데, 신청과 동시에 마감했다.
배기 시스템은 티타늄으로 구성되어 있다.
드라이브 모드 셀렉터는 모두 18K금이다.
한 대 가격은 26억 원.
바투르는 W12 6.0리터 엔진을 사용하는 마지막 모델이다.
이를 기점으로 2025년 전동화의 길로 접어든다.
순수전기차에는 바투르의 디자인을 적용한다.
2002년 공개한 '벤틀리 스테이트 리무진(Bentley State Limousine)'.
엘리자베스 2세의 즉위 50주년을 기념한 '여왕만을 위한 차'다.
두 대가 만들어졌으며 가격은 대당 170억 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여왕 맞춤형'이다.
뒷좌석 위치는 여왕과 정확히 같은 키의 모델로 결정했다.
핸드백 보관함은 여왕이 가장 좋아하는 'L'사의 핸드백 크기에 맞게 설계했다.
뒷좌석 커버에는 'H'사 양모를 썼다.
H사는 1922년 설립한 최고 퀄리티의 양모 직조회사다.
후면의 카펫은 옅은 파랑, 전면은 진한 파랑이다.
'여왕 맞춤형'에서 벤틀리의 철학을 다시 읽을 수 있다.
'Be Extraordinary'.
뮬리너는 'Beyond Extraordinary'다.
<다음 회에는 마이바흐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