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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소록도 작은 할매 잠들다

등록 2023.10.03 20:47 / 수정 2023.10.03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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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청준이 1960년대 소록도 병원장 조창원을 주인공으로 써낸 걸작 장편이 '당신들의 천국' 입니다. 억척스럽게 한센병 환자들의 꿈과 희망을 일깨웠던 의사 조창원, 그는 만년에 백로 그림에 몰두했습니다.

무지개 건너 날아온 두마리 백로가, 핀셋을 부리에 물고 문드러진 발을 치료합니다. 그가 꿈처럼 맞이했던 천사 마리안느와 마가렛입니다. 두 오스트리아 간호사가 환자들의 짓무른 몸을 맨손으로 보살피는 것을 보며, 그는 부끄러웠다고 회고했습니다.

소록도 의사들은 "마스크에 고무장갑 끼고, 고무장화 신고, 완전 무장하고서" 치료했던 겁니다. 하지만 그 뒤에도 다들 맨손 치료는 엄두를 못 냈다고 고백했지요. 간호대 동기였던 두 꽃다운 젊음은 43년 세월을 먼 이국땅에서 아무 대가 없이 헌신했습니다. 소록도에서 숨 거두기를 소망했습니다.

하지만 몸이 병들자 짐이 될까봐 몰래 소록도를 떠났습니다. 짐이라곤 갖고 왔던 해진 가방이 전부였지요. 그때 남겼던 편지 한 구절을 마리안느가 되뇌입니다.

"헤어지는 아픔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마가렛은 치매에 빠졌지만 소록도 시절만은 따뜻하고 행복하게 기억했습니다. 

"일생 동안 저기 살았는데 생각나요. 저기 사람들, 저기 식구들, 환자들… 뭐 다 보고 싶어요." 

그 마가렛이 다시 소록도를 밟지 못한 채 여든여덟에 선종했습니다. 

멀고도 가난했던 한국이란 나라에서 간호사를 구한다는 말을 듣고 찾아 온 게 54년 전 꽃다운 스물네 살 때였습니다. 한센병 환자를 보살피다 수녀원을 거쳐 소록도에 마리안느보다 4년 뒤에 왔지요. 다들 수녀라고 했지만 세속에서 독신의 순명을 지키며 사는 재속회 신도 였습니다.

언제나 온몸으로 껴안아주는 두 사람을 환자들은 '할매'라고 불렀습니다. 마리안느가 큰 할매, 한 살 아래 마가렛이 '작은 할매' 였지요. 두 할매는 병원 치료를 마치면 늘 음식을 챙겨 들고 일곱 마을을 돌곤 했습니다.

두 사람은 숨어서 어루만지는 손의 기적과 주님밖엔 얼굴을 알리지 않는 참된 베풂을 믿었습니다. 상도, 인터뷰도 모두 마다했습니다. 회갑잔치를 열어주겠다고 하자 "기도하러 간다"며 피했습니다.

한 달에 10만 원씩 나오는 봉사자 식비와 본국 수녀회가 보내오는 생활비마저 환자 우유와 간식, 성한 몸으로 떠나는 사람들 노잣돈으로 쥐여줬다고 합니다.

앉은뱅이책상 하나 놓여 있는 숙소 방 한지 창에 이런 글귀가 붙어 있습니다. '무소유의 삶에 마음을 내려놓고 사랑하라' 두 성자(聖者)가 소록도에 남긴 치유의 흔적들이 오래도록 우리를 위로합니다.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알싸한 사랑의 향기로 우리네 각박한 일상을 어루만져 줍니다. 

"다들 좋아했어…행복하게 살았어. 저기에서, 아주 좋았어."

10월 3일 앵커의 시선은 '소록도 작은 할매 잠들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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