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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비서실장은 뭐했나

  • 등록: 2023.12.06 16:15

  • 수정: 2023.12.06 21:01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이 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방송통신위원장 후보 등 인선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이 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방송통신위원장 후보 등 인선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통령실엔 지금 '의전비서관이 3명 있다'는 얘기가 돈다. 지난달 임명된 이기정 의전비서관 외에도 수행을 담당한 김모 국장과 김용현 경호처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 세 '의전비서관'은 대통령이 나오는 행사엔 어김없이 등장해 지근거리에서 수행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줄곧 담긴다.

경호·수행·의전을 담당한 이들이 그러는 게 무슨 문제냐고 할 수 있지만, 이런 최측근일수록 카메라 앞엔 가급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사각지대에서 활동하는 게 과거 청와대 시절부터 관례이자 의전 프로토콜이었다.

심지어 외부가 아닌 용산 대통령실에서 진행된 국무회의 입장 때도 경호처장이 대통령 바로 옆을 '열심히' 최근접 경호하는 모습에 일부 참석자 사이에선 '그 정도로 대통령실 내부가 위험한 곳인가'란 얘기도 나왔다고 한다.

'과잉 경호'란 지적이 나오지만, 대통령의 고교 1년 선배인 경호처장 입장에선 0.1% 위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에 본인이 직접 경호 최일선에 나선 것이라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 충정이 읽혔는지 최근 들어선 국정원장 후보로도 그 이름이 오르내렸다.

'과잉 경호'보다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과도한 '심기 경호'다.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의 핵심 관계자들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는다는 지적이 최근 들어 부쩍 늘었다. '지난해 5월 취임 때부터 늘상 있어온 경쟁자들의 음해'라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분위기지만, 얼마 전부터 지나친 '심기 경호' 때문에 국정까지 흔들리는 사례가 빈번해졌다는 주장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2030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와 관련해 '자신의 부족함'을 세 차례 강조하며 대국민 담화를 했다. /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2030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와 관련해 '자신의 부족함'을 세 차례 강조하며 대국민 담화를 했다. / 대통령실 제공


■'심기 경호'와 '국정 오판'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연단에 서서 '예측 실패'를 인정하며 대국민 사과한 부산엑스포 유치 '오판'은 대통령실과 정부부처의 정보 수집·분석·판단에 총체적 문제가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유치 과정을 지켜본 여권관계자는 "애초 불리한 여건에서 시작된 엑스포 유치는 실패할 수 있고, 또 그럼에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건 바람직하지만, 참모들이 '심기 경호'에만 매몰돼 대통령까지 오판하게 만든 건 국기문란에 가까운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대통령의 공개사과는 참모들 입장에선 사실상 '참사'에 가까운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이미 직접 책임을 인정했으니 참모나 장관을 경질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습을 보면, 이들에게 '위기의식'이란 먼나라 얘기인 듯하다. 엑스포 유치 실패의 전 과정을 함께 했던 수석급 참모들은 총선 출마 등을 이유로 용산을 떠났다. 그들의 표정은 그리 어두워 보이지 않았다.

'정무적 오판' 사례도 있다. 지난 10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당시 김태우 후보를 내세우고선 '역전이 가능하다'며 여권이 총동원돼 승부를 벌였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애초 대다수 전문가나 기자들도 충분히 예견한 결과였고, 대통령실에서도 관련 보고가 여러 차례 올라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통령의 눈과 귀까지는 이르지 못한 듯하다.

방송통신위원장 소동도 '전략 부재'였다. 이동관 위원장 인선부터 '탄핵 직전 사퇴'까지 100일에 걸쳐 정국이 긴박하게 굴러가는 동안 여권은 별다른 대책 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대통령이 가장 존경한다는 선배 검사를 법무장관 후보군에서 돌려 방통위원장 후보로 지명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른바 '인사 돌려막기 논란'은 지난 4일 단행된 6개 부처 개각에서도 불거졌다.

'윤석열 정부 2기'를 내세운 큰 규모의 개각이었지만, 총선 출마에 나선 장관들의 빈자리를 채우느라 급조한 티가 난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서·오·남(서울대·50대·남성)' 을 탈피한다며 여성 3명을 발탁했지만, 그중 2명은 부처와의 연관성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

임명된지 3개월도 안 된 산업장관을 총선용으로 교체 검토하고, 국정원장 후임엔 '확실히 믿고 맡길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국가안보실장을 투입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장관급 인선 때마다 대통령실에서 나오는 단골 멘트는 "사람이 없다"다. 적임자들은 신상털기식 청문회 부담을 가족들에게 지우기 싫다며 고사하고, 별 얘기가 안 되는 사람들은 '자리 욕심'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이유다.

하지만 이는 지난 정부들도 똑같이 감당했던 과제들이다. '개인적 리스크를 감수하고도 이 정부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인재가 적다는 것은 그만큼 그 정부에게 희망과 비전이 있다고 보는 인재들이 적다는 의미와 같다. 기업의 인재풀이 적다고 하면, 그 기업과 브랜드에 비전이 없다는 뜻이다. '윤석열 브랜드'에 대한 경고등이 인재난에서부터 켜진 셈이다.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엑스포 유치 실패 관련 대국민 담화'를 듣고 있는 김대기 비서실장(왼쪽 세번째)과 김용현 경호처장(왼쪽 두번째) 등 참모들의 모습. /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엑스포 유치 실패 관련 대국민 담화'를 듣고 있는 김대기 비서실장(왼쪽 세번째)과 김용현 경호처장(왼쪽 두번째) 등 참모들의 모습. / 연합뉴스


■비서실장 책임론


현재 대통령실에서 수석급 이상 원년 멤버는 김대기 비서실장과 김용현 경호처장, 그리고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정도가 꼽힌다. 대통령실을 향한 끊임없는 비방과 도전에도 그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최근들어 이들을 향한 '음해성 첩보들'이 난무해 특정 목적을 가진 누군가 조직적인 공격에 나섰다는 관측도 나온다. 출처불명·사실무근 지라시에 휘둘릴 필요는 없지만, 갑작스레 그 물량이 급격히 늘어나는 상황은 정권에 대한 이상신호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대기 실장은 본인에 대한 경질설 보도가 나올 때마다 "나는 두 달에 한 번씩 교체된다"며 대수롭지 않게 반응한다. 두 달에 한 번꼴로 본인 거취에 대한 오보가 나오니 충분히 그럴만도 하다. 김 실장에 대한 윤 대통령의 신임도 여전히 두텁다. 하지만 대통령실 내부에서부터 심각한 수준의 국정 정보 오판이 발생한데다 각종 위기에 제대로 된 대응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이 이어지면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인사 난맥상은 김 실장의 역할과도 직접 맞닿아있다. 정당에 인재영입위원장이 있다면 정부에선 김 실장이 사실상 인사 추천 과정을 관할해왔다. 검찰 인맥과 MB 정부 경험자들의 교집합 인재풀 속에서 출마자의 공석을 돌려막는 인선으론 국민에 감동을 주기는커녕 실망감만 높여갈 뿐이다.

정책실을 폐지하고 출범한 대통령실은 집권 초반 비서실장에 과도한 업무가 부여돼 선제적인 기획이나 세밀한 정책조정에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국정기획수석을 신설해 이관섭 수석이 정책 파트를 담당해왔고, 이번엔 아예 '정책실장'을 부활시켜 경제정책과 교육·노동·복지 등 개혁 의제를 관할하게 했다. 비서실장이 차분하게 인사와 정무, 홍보 전반을 챙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의미다.

지난 대선 때 유권자의 과반은 '공정하고 상식적인 정부'를 기대하며 윤석열 후보에 표를 던졌다. 그러나 어느 순간 대통령실에서 '공정과 상식'을 말하는 이가 없고, 불필요한 잡음만 커져간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의 '운명'이 걸렸다는 총선이 이제 넉달 남짓 남았다. 매번 그래왔듯 여당은 혁신과 담을 쌓은 채 향후 '공천 내전'을 앞두고 저마다 명분 쌓기에 들어갔다. 대통령실이 지금처럼 중심을 잡지 못하면 국민은 언제든 준엄한 심판을 할 태세다. 초겨울부터 이미 꽁꽁 얼어붙은 민심을 용산만 잘 모르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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