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과 동교동계로 불렸던 핵심 측근 그룹의 '정치적 본거지'였던 'DJ 동교동 사저' 매각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의 향수'도 점차 저물어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사저 매각 소식이 하나 둘씩 들려오니 말입니다.
멋스러움과 낭만이라고 해야할까요? 아니면 겉 다르고 속 다른 '막후 정치'라고 해야할까요? 물밑 접촉과 동업자 배려가 사라진 듯한 현실 정치를 보면서, 문뜩 그 시절 '정무 감각'이 그리워지곤 했는데요.
YS(상도동)·DJ(동교동)·JP(청구동/신당동) 자택 매각 당시 상황을 보면서, '생전 그분들과 닮은 구석이 있다'는 생각도 일견 들었습니다.
우선 YS입니다. 어떠한 위기가 닥쳐도 '닭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로 대변되는 그의 자존심을, 후손들이 십시일반(十匙一飯)해 지켜줬다고 보여집니다.
YS는 3김 가운데 가장 풍족한 집안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죠. 물질적 뒷배가 좋았기 때문에, 평생 돈 걱정 없이 정치했다는 소문이 났을 정도니까요. 그런 YS는 생전에 상도동 자택도 사회에 환원했습니다. 훗날 돌아가신 손명순 여사가 생존해계실 때까지만 사용하겠다면서요.
그런데 기념도서관 건축과 각종 기념사업 추진 과정에서의 방만 경영, 그리고 '유산을 받지 않았음에도' 부과된 세금 압박 등을 이기지 못해 생가 주변 경남 거제 등지의 부동산을 대부분 정리한 데 이어 상도동 자택도 매물로 내놓게 됐습니다.
이런 상황에 이르자 YS의 장손이 '아무리 어려워도 외부로 소유권을 넘겨줘선 안 된다'는 일가의 뜻에 따라 은행 대출 7억을 받아, 11억에 사저 소유권을 넘겨 받았습니다.
YS가 부친인 김홍조 옹에게 증여받았던 상도동 사저를, 후손들은 그 사저를 물려받기는 커녕 본인들의 돈을 들여 다시 그 집을 재구매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야말로 "우째 이런일이"였던 것이죠.
그럼에도 후손들은 당연히 할 일을 했다는 입장입니다. 안타깝게도 지난 7일 YS의 장남인 김은철씨(68)가 별세했는데요. 사저 소유권 지분을 갖고 있는 장손 성민씨가 상도동 사저 2층을 당분간은 사용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반면 동교동계로 불렸던 측근 그룹 중에는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는 정치인이 있을 정도로 '정치적 유산'도 상당했는데, DJ의 정치 역정만큼이나 순탄치 않은 상황에 놓인 듯합니다.
3김 가운데 유일하게 '유산(사저 및 노벨상 상금 등)' 이슈로 소위 형제의 난이 벌어졌고, 급기야 지난 2일엔 각종 논란을 야기한 채 사저 소유권이 100억 원을 건넨 타인의 손으로 넘어가게 됐으니 말입니다.
앞서 이희호 여사는 "(사저를) 김대중·이희호 기념관으로 사용한다"며 "만약 지자체와 후원자가 매입해 기념관으로 사용하게 된다면 보상금의 1/3은 김대중기념사업회에 기부하며, 나머지 2/3는 김홍일·김홍업·김홍걸에게 균등하게 나눈다"고 유언했는데요.
3남인 김홍걸 전 의원은 둘째 형인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과도 상의하지 않은 상태로, 사저를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와 관련해 김 전 의원은 "거액의 상속세 문제로 세무서 독촉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매각을 결정했다"며 "어디까지나 사적인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저를 매입한 박모씨 등 3인이 '공간 일부를 보존해 DJ의 유품을 전시할 것'이라는 뜻을 김 전 의원에게 밝혔다고 했음에도, 세간의 평가가 그리 긍정적이진 않습니다.
뚜렷한 직업 없이 해외에서 장기간 공부했던 김 전 의원은 지난 21대 총선 과정에선 다주택 이슈에 재산축소 논란까지 일었는데, 최근 상속세를 언급하면서 사저를 100억 원에 매각한 게 '대중들의 눈'에 좋게 보일리 없다는 것이죠.
DJ는 생전에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강조했는데요. 사저 매각 이슈는 명분과 실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전부 놓쳐버린 것 아니냐며 '아버지 명성에 누를 끼쳤다'는 아쉬움이 짙게 전해집니다.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슬로건을 머리맡에 두고 함께 동고동락했던 '동교동계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입니다. 여전히 '김대중'이라는 명칭을 앞세워 각지에서 활동하게 있으면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사저 민주화'도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죠.
반면 청구동 사저는 상대적으로 '소리 소문 없이' 매각됐습니다. 'JP 별세' 10개월 여 뒤인 지난 2019년 4월, JP의 아들인 김진 운정장학회 이사장은 사저를 정리한 뒤, "평생을 부모님과 함께했던 청구동(신당동) 집을 완전히 인도했다"고 뒤늦게 자신의 SNS를 통해 밝혔습니다.
JP는 청구동 사저를 장녀인 김예리씨와 김 이사장에게 물려줬는데, 이들은 유지관리비 부담 등을 이유로 소유권 매각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JP의 후손들은 나머지 두 분의 전직 대통령 후손들과 달리 현실 정치 참여도 하지 않았기에, '자의 반, 타의 반' 사저를 계속 유지하고 관리할 의무도 덜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허업(虛業)인 정치를 대를 이어서까지 할 생각도 없으셨던 것 같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그야말로 아버지의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을 후손들이 잘 따랐다고 봐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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