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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해부] "송혜희를 찾아주세요" 25년을 찾아헤맸는데…끝내 찾지 못한 딸

  • 등록: 2024.08.30 08:19

  • 수정: 2024.08.30 09:03

[앵커]
매주 금요일 이시간, 한주간 관심을 끈 사회 이슈를 짚어봅니다. 사건의 해부 시간입니다. 사회부 사건데스크, 최석호 차장 나왔습니다. 최 차장, 오늘 주제는 뭔가요?

[기자]
오늘의 주제입니다. '끝내 찾지 못한 딸'. "실종된 송혜희를 찾아주세요." 거리를 지나다 이 현수막, 한번쯤은 보셨을 겁니다. 실종된 딸을 찾겠다며 1999년부터 전국을 찾아헤맨 송길용 씨 얘기입니다.

송길용 / 송혜희 씨 아버지 (2012년)
"다른 전단지 같으면 부탁도 못드리는데 좋은 하는 일 한다치시고 부탁좀 드릴게요. 13년을 이러고 다니거든요. 이건 실종될 때 모습이고, 고1 때. 이건 이제 커가지고 13년 된 얼굴이니까."

송길용 / 송혜희 씨 아버지 (2012년)
"이거 한장만 읽어주십시오. 이거 한장만 읽어주실래요? 고맙습니다."

25년간 딸을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살았습니다. 그랬던 그가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한 채 향년 71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앵커]
저도 이 현수막 본 적 있습니다. 그런데 사망 원인이 뭔가요?

[기자]
교통사고였습니다. 지난 26일, 폐품 수거 트럭을 운전하다 마주오던 덤프트럭과 충돌해 세상을 떠난 겁니다. 기초생활수급자였던 송씨는 이날도 딸의 실종 현수막과 전단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폐품을 수거하다 변을 당했습니다. 송씨의 사망 소식을 지인들에게 알린 것도 현수막 제작업체 관계자였습니다. "플래카드를 잔뜩 주문을 해 놓고는 가지러 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송씨는 끝내 물건을 찾으러 가지 못했습니다.

나주봉 / 전국 미아실종 가족찾기 시민의모임 회장 (그제)
"이 양반이 밥은 굶더라도 전단지나 플래카드는 끊임없이 만들어서 부착하고 그랬습니다. (실종된 딸이) 어딘가 모르지만 살아있을 거라고 희망을 갖고…"

[앵커]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그런데 송혜희 양은 언제, 어떻게 실종이 된 건가요?

[기자]
1999년 2월 13일이었습니다. 당시 17살이던 송혜희 양은 밤 10시쯤 경기도 평택의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뒤 행방불명됐습니다. 송양이 탔던 버스는 막차였고, 당시 버스기사는 "30대로 보이는 낯선 남성 승객이 송양을 따라내렸다"고 증언했습니다. 그것이 송양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송길용 / 송혜희 양 아버지 (2012년)
"시골길에서 내려가지고 집이 들어오면 한 2km 떨어져요. 근데 거기서 30대 남자랑 같이 술취해갖고 같은 방향으로 오다가 지금까지 없어졌어요. 그때서부터 애를 찾기 시작했는데…"

[앵커]
경찰에도 신고를 했을 것 아닙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송양의 가족은 실종 당일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단순 가출일 수 있다"면서 3일 후에야 수사에 착수합니다. 뒤늦게 수사를 시작한데다가, 지금처럼 CCTV도 많지 않았던 시절입니다. 이 때문에 송 양을 따라 버스에서 내린 30대 남성이 유력 용의자로 보인다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잡지 못했습니다. 6개월간 진행된 수사는 소득없이 끝났고, 2014년 2월엔 공소시효도 만료됐습니다. 송씨와 그의 아내가 딸을 찾아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앵커]
무려 25년입니다. 거리에 내건 현수막이나 시민들에게 나눠준 전단지의 양도 엄청 날 것 같아요?

[기자]
도심은 물론이고 고속도로 휴게소와 대학가까지, 송씨는 손수 플래카드를 내걸었습니다. 2016년까지 전국에 내걸린 현수막은 2500장이고, 송씨가 시민들에게 나눠준 전단은 300만 장, 딸을 찾기 위해 트럭을 몰고 다닌 거리는 72만km가 넘습니다. 살아생전 송씨는 "딸의 사진이 들어간 전단을 매주 4000장씩 뽑아 돌린다"고 말했습니다.

송길용 / 송혜희 양 아버지 (2012년)
"내가 화물차가 하나가 있었어요. 지금도 있습니다. 내 화물차에는 온통 얘 사진으로 전부 범벅이 됐어요. 13년을 우리 애엄마하고 13년을 차에다 풀하고 컵라면만 싣고 전단지만 싣고 5년을 돌아다녔어요. 전국 방방곡곡에 안 가본데가 없어요."

[앵커]
트럭 몰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면서 딸을 찾아다녔다는 거잖아요?

[기자]
인근 주민들은 송 씨를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최상식 / 인근 주민
"사거리마다 현수막 붙여놓고 자기 차에 붙이고 다니고 뭐 오랫동안 그러고 다녔어요. 20여 년 넘게 이렇게 따님 찾으러 다녔는데 참 안타깝죠. 누구보다도 자식 사랑이 끔찍했던 분 같아요."

송길용 씨는 혜희 양 실종 7년만에 아내도 먼저 떠나보냈습니다. 딸을 잃은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2006년 실종전단을 품에 안은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딸을 찾기 전에는 눈을 감을 수 없다"던 송 씨까지 영면에 들었습니다.

[앵커]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아버지는 하늘나라에서도 혜희 양이 무사히 돌아올 그날만을 기다리실 겁니다. 최석호 차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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