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문형배의 '좋은 재판'…이광범 '좋아요'
2018년 10월 14일, 사법농단 수사가 한창이던 시기,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대행(당시 부산고법 부장판사)은 SNS에서 '좋은 재판'을 강조했다.
"사법의 신뢰는 좋은 재판을 하는 데서 오고 재판에 대한 승복으로 나타난다."
현재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 대리인단인 이광범 변호사가 '좋아요'를 눌렀다.
물론 단순한 공감 표시일 수도 있다. 또 '좋은 재판'을 강조한 글에 공감을 표한 게 왜 문제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좋은 재판'이라는 표현이 단순한 법률적 수사가 아니라, 특정한 사법 철학을 담고 있는 개념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2017년 김명수의 '좋은 재판'… '우리법연구회' 공통점
'좋은 재판'이라는 표현이 처음 눈에 띈 건 2017년 김명수 대법원장의 취임사에서였다. 당시 김 대법원장은 "사법부가 국민에게 드릴 수 있는 최고의 보답은 좋은 재판"이라고 했다.
'좋은 재판'을 전면적으로 내세웠다. '좋은'이라는 형용사는 일상적으로 자주 쓰이지만, 공적인 연설에서 사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기자들도 지양하는 경향이 있다. 개념이 모호하고, '좋음'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당시 '좋은 재판'이라는 표현이 새롭게 느껴졌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과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대행, 이광범 변호사,셋의 공통점은 모두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지냈다는 점이다.우리법연구회는 1988년 설립된 진보적 성향의 법조인 모임이다. 사법 개혁을 주장하는 판사들이 이 모임 출신인 경우가 많았고, 일부는 진보적 판결과 '사조직 문화'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법연구회에서 '좋은 재판'이라는 개념이 꾸준히 강조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사법 개혁'과 같은 가치와 종종 연결되어 왔다. 문형배 대행이 과거 언급했던 '박시환 정신'에도 담겨 있다. 박시환 전 대법관은 부장판사 시절인 2003년, "좋은 재판을 하고 싶었습니다"라며 기자들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는 대법원 개혁을 외치고 사표를 던진 직후였다.
'우리법연구회' 창립 멤버이자 '목숨 걸고 재판하는 판사'로 추앙받았던 고(故) 한기택 판사의 철학 역시 '좋은 재판'과 맞닿아 있었다. 즉, '좋은 재판'이라는 개념은 단순한 법률적 이상이 아니라, 사법 개혁을 추구하는 법조인들에게 중요한 가치로 여겨져왔던 셈이다. 실제로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사법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좋은 재판'이라는 가치를 실현을 위한 핵심 과제라고 했다. 퇴임사에서도 '좋은 재판'이라는 표현을 11번이나 반복했다. '좋은 재판'이라는 개념을 자신의 사법 철학의 중심에 두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문형배의 SNS …이재명·이광범과의 흔적
문 대행 SNS엔 이광범 변호사를 포함한 우리법연구회 출신 법조인들과 교류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광범 변호사는 위에 언급한 '좋은 재판' 글 외에도 문 대행이 올린 '우리법연구회' 회장 출신인 고 한기택 판사 추모 글에도, 문 대행의 세계선거재판회의 참석 사진에도 '좋아요'를 눌렀다.
뿐만 아니라, 문 대행은 일부 정치인들과 소통해왔다. 특히 2011년~2013년엔 이재명 성남시장과의 SNS 활동도 드러났다. 문 대행은 당시 이 시장의 안부, 이 시장은 문 대행 아내의 안부를 묻기도 하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정황이 확인되었다.
물론 단순한 SNS 활동이 법률적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특정한 법조인 네트워크 안에서 '좋은 재판'이라는 개념이 공유되고 발전되었다면, 그것이 과연 보편적인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들만의 '절대선' '성역' 같은 '좋은 재판' 개념인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문 대행은 TV조선과의 첫 통화에서 과거 이재명 대표와의 교류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캡쳐된 기록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후엔 입장을 바꾸었다. 문 대행은 "사법연수원 때 노동법 연구회 같이 한 정도의 친분"이라며, "이 대표가 유력 대선 후보가 된 뒤로는 의도적으로 관계를 다 끊었다"고 설명했다.
문 대행은 2020년 SNS에 헌법재판관 1년 차 소감을 전하며 "나는 제대로 길을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이 글에서 "헌법 재판은 헌법을 만든 이의 뜻을 밝혀내는 과정"이라며, "국민의 뜻이 중요하다"고 했다. (다만, 문 대행이 해당 글을 올린 날짜는 4월 19일로, 4·19 혁명 기념식을 간 잊지 못할 경험도 덧붙이긴 했다.)
'좋은 재판'은 누구의 기준에서 정의될까? 법관들이 스스로 '좋은 재판'을 정의하고 국민에게 이를 승복하고, 따르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사법부의 신뢰는 '좋은 재판'이라는 수사적 단어가 아니라,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공정한 재판에서 나온다. 지금의 사법부는 과연 그 기준을 충족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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