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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동과 감지] 정연두 개인전 '불가피한 상황과 피치 못할 사정들'

  • 등록: 2025.05.05 오후 13:02

  • 수정: 2025.05.05 오후 21:27

'바실러스 초상' /국제갤러리 제공
'바실러스 초상' /국제갤러리 제공

남자의 얼굴은 진지하다 못해 슬퍼 보인다. 그는 지금 품에 안은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고 있다. 손끝에서는 끊임없이 음악이 만들어지지만, 그 소리는 전시장의 소음 때문인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고 분절되어 들린다. 연주는 음악이라기보다 차라리 신호 같다. 끊어질 듯 지속되고, 흐릿하다 선명해지는. 살아있는 몸에서 무겁게 흘러나오는 끈적한 신호.

전시장에는 네 명의 연주자가 더 있는데, 그들의 블루스는 모두 67BPM의 느린 속도로 흘러간다. 작가 정연두는 다섯 명의 연주자에게 공통의 속도와 코드를 일러주고 자유롭게 연주하도록 안내했다. 커다란 화면 속에서 그들은 분주하다. 주어진 과제를 감당하느라, 매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내느라. 그러니까 이것은 우리 각자가 연주하는 삶이다. 서로 다른 선율과 리듬이 화합하거나 충돌할 때 그것은 합주를 이루고, 이 작은 전시장은 세계가 된다.

갤러리 입구에서 이미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에게 매혹된 나는 발걸음을 옮기다가 작게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 각기 다른 모양으로 메주에서 피어오른 균을 찍은 작품 '바실러스 초상'을 보는 순간, 균과 음악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들은 '불가피한 상황과 피치 못할 사정'이 만들어낸 궤적이 아닌가. 누군가의 안에서 발효되고 썩음으로써 새 생명을 얻은. 농익고 부패해서 어쩌면 더 아름다운. 이 형질 변화는 시간을 통과한 존재에게만 가까스로 주어지는 아름다움이다. 그러니까 빵을 만들기 위해 그저 흩뿌려놓은 밀가루에 불과할지라도, 누군가의 관점에서는 광활한 우주일 수 있다고.

전시장 전체가 가볍게 생동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은 공간을 보이게, 보이지 않게 흐르는 여러 층위의 음악 덕분일 수 있다. 연주자들이 빚어내는 음악, 균이 피어오르고 기포가 터지는 소리,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연결과 접합의 리듬. 근래 만난 최고로 음악적인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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