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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통의 미학:유니폼을 꿰뚫다] KT 문경은 감독과 김선형의 ‘지금, 여기’

  • 등록: 2025.06.16 오전 10:27

  • 수정: 2025.06.16 오전 10:39

/TV조선 방송화면 캡처
/TV조선 방송화면 캡처

투쟁심으로 똘똘 뭉친 실업팀 아저씨들이 벌이는 사생결단의 한 판 승부, 그들을 꺾어 X세대의 등장을 세상에 알린 신촌과 안암의 훈남 오빠들.

그런 농구대잔치의 팬 출신으로서 요즘 프로농구의 인기 하락은 애가 탈 지경이다.

2024-2025시즌 전체 중 최고를 찍었다는 남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마지막 경기의 TV 시청률이 여자프로배구 2024-2025시즌 전체 평균 시청률(1.12)의 5분의 1 정도라는 데이터는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홍보 효과, 사업의 규모 등을 떠나 회계 장부 기준으로도, 7·8배 더 많은 돈을 쓰는 프로야구단 운영이 남자프로농구단보다 매력적이라는 세간의 판단이 있다고 하니 흰소리라고 넘겨버릴 상황은 아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 구성원들의 밥벌이 공간이 치열하게 흘러가는 건 더 독한 현실이다. 구단 내 권력 암투가 다채로운 건 드라마 하얀거탑처럼 울타리 안에서는 너무나도 진지하고 대단한 일이다.

새 시즌을 맞는 프로농구 10개 구단 중 절반이 감독을 교체했다. KT 소닉붐의 문경은 감독은 새롭게 바뀐 5명 중 한 명이다, 4년 만에 사령탑으로 돌아온 그의 복귀 일성은 자연스럽게 ‘우승’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시작부터 난감해졌다. 주전 가드 허훈이 친형이 소속된 KCC로 이적해 버린 것.

문 감독의 MBTI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지만, 허훈 이적에 대한 그의 반응으로 유추해 본다면 그는 ‘T(사고형)’일 것 같다. 그는 감정 표현 없이 곧바로 SK 나이츠에서 자유계약선수로 풀린 김선형에게 전화했다.

문 감독의 전화를 받은 김선형은 그때 가족과 식사 중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오후 KT와 계약을 했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말했다. ‘지금, 여기’…. 뜬금없는 실존 철학 얘기를 떠올린 이유는 한 때 농구판에 떠돌았던 둘 사이의 ‘균열설’ 때문이다. 우승 여행 과정에서 있었던 해프닝, 이후 둘의 사이가 잠시 서먹해졌다는 소문이었다.

둘은 오랜 시간을 SK에서 함께했다. 문 감독이 처음 한 구단의 사령탑이 됐을 때 김선형이 프로에 입단했다. 10년 동안 2번의 우승 경험을 함께한 스승과 제자의 사이다. 그사이 감독은 리그 최고의 지도자로 자리 잡았고, 농구를 잘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인물도 훤하고 노래까지 잘하는 에이스는 한국 농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태생적 조건이나 경험에 의해 정의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만들어가는 것, 바로 실존이다. 근거 부족의 소문이더라도, 김선형은 그 순간 자신을 정의하는 선택을 했다. 과거의 감정, 주변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목적과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떤 선수가 될 것인가에 따른 결단을 내린 것이다.

문 감독도 마찬가지. 허훈이라는 ‘확실한 무기’를 잃은 순간에도 다시 김선형을 향해 손을 뻗었다.

실존은 곧 행동이고,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는 것이라고 사르트르는 말했다. 둘은 이제 그 책임을 짊어지고 같은 유니폼을 입는다. 누군가가 과거를 묻겠지만, 그들에게 중요한 건 “지금 여기서 무엇을 선택하느냐”다.

문 감독의 전화 한 통, 그리고 김선형의 응답. 프로는, 본질보다 앞선 실존으로 승부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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