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M16밖에 모르는데."
서울의 한 사무실에서 남성들이 모여 모형 소총을 요리조리 살펴보고 방아쇠를 당겨본다. 군복을 갖춰 입고 익숙치 않은 훈련용 모형 소총을 만지작거리는 남성들, 자세히 보니 머리는 희끗희끗하고 손에는 잔주름이 졌다. 바로 시니어 아미 회원들이다.
지난 23일 TV조선 취재진이 6·25 전쟁 발발 75주년을 맞아 서울 동작구 시니어 아미 사무실에서 진행된 실내 훈련 현장을 찾았다. 시니어 아미(Senior Army)란 50대에서 80대까지의 은퇴세대인 장년층들이 자발적으로 유사시 참전을 전제로 하는 군사훈련을 받는 단체다. 일종의 예비군 성격으로 2년 전 국방부 사단법인으로 창립됐다.
휴전상태로 북한의 위협이 현재진행형인 와중에 지속되는 저출산 현상 속에서 군 병력이 줄어들자, 제대한지 수십 년이 지났어도 다시 훈련을 받고 싸우겠단 노병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창립 당시 60여 명에 불과하던 회원은 2년 새 3000여 명으로 50배 가량 폭증했다.
참전용사였던 선친을 둔 이기선(65) 씨는 "제대한 지 40여 년이 흘렀지만 시니어 아미라는 용어를 접하자마자 국가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에 지원했다"고 밝혔다. 이 씨는 "'막상 전쟁이 났다고 생각하면 과연 누가 저 맨 앞에 뛰어나갈 수 있겠는가'란 생각이 들어 나 자신이 후손들을 위해 맨 앞에 달려나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자원했다"고 의지를 표했다.
시니어 아미는 비록 명칭은 시니어(Senior·장년층)이지만 군 제대 여부와 상관 없이 청년이나 여성들도 지원할 수 있다. 윤승모 시니어아미 대표는 "어르신으로 대접받기 보다 대가 없는 봉사를 통해 더 큰 자긍심을 느끼는 깨인 세대가 되고 싶다"며 "꼭 시니어가 아니어도 국가안보를 생각하는 마음만 한 뜻이라면 남녀노소 상관 없이 참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일평생 전업주부로만 살았던 박경숙(67) 씨는 남편의 권유를 받아 여성의 몸으로 시니어아미에 입단했다. 박 씨는 평소 부친 박황용(98) 옹으로부터 6·25 전쟁 발발 당시의 참상을 들으며 자랐다. 대전 동구의 자택에서 만난 박 옹은 해병대 16기의 참전용사지만 관련 훈장을 달지 않은 채 인터뷰에 임했다. 박 옹은 "내가 다른 나라하고 싸운 것도 아니고 동족끼리 싸워놓고 뭐가 자랑스러워서 훈장을 달겠어"라며 당시 겪은 참상을 들려주었다. "전쟁이라는 것이 죽고 사는 게 달린 거거든. 어젯저녁까지 같이 자고 같이 근무하고 같이 총 들고 싸우고 하던 사람이 오늘 가보면 (죽어서) 없어"라며 떠나간 전우들을 추억했다. 그는 평화에 익숙해져 전쟁의 잔혹함을 잊은 청년들에 대해 "우리 후손들이 나하고 대대적인 원수, 이것은 내가 알고 있어야 될 거 아니여"라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처럼 어려서부터 부친에게서 전쟁의 참상을 들어온 박 씨는 '내 가정은 내가 지킬 수 있어야 겠다'는 생각에 남편과 함께 시니어아미에 입단했다. 박 씨는 "아버지가 전쟁을 세 번(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6·25 전쟁) 겪으시면서 평화의 중요성을 늘 가르치셨다"며 "여자도 전쟁이 나면 나라를 위해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입단하게 됐다"고 포부를 밝혔다.
남편 김삼봉(69) 씨도 "청년 군인들보다 체력은 부족할 지 몰라도, 늙었다고 전투에는 안 내보내 줄지 몰라도, 후방에서 탄약을 나르든 보급품을 조달하든 분명히 우리의 역할이 있다고 믿는다"며 시니어 아미로서의 활동에 자부심을 가졌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