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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호의 앵커칼럼] 처세의 달인

  • 등록: 2025.06.26 오후 21:52

  • 수정: 2025.06.26 오후 21:55

"혹시 내 영광이 부럽나? 내게 충성하면 나눠줄 수도 있어."
"폐하, 저는 그저 당신을 섬기고자 할 뿐입니다."
"그렇게 말하니 진심이 눈에 안 보이는군."
"사람이 말하는 건 자신의 눈을 숨기기 위해서죠." 

'탈레랑'은 프랑스 혁명기와 나폴레옹 집권기, 왕정복고기를 풍미한 걸출한 외교관 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에 저 유명한 메테르니히가 있었다면, 프랑스에는 탈레랑이 있었죠.

그는 나폴레옹 전쟁 패배 후 위기의 프랑스를 구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전혀 성격이 다른 혁명 정권과 황제, 왕들을 섬기며 일생을 배신과 변절로 일관한 걸로도 유명합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유임을 놓고 말들이 많습니다. 국정철학이 완전히 다른데, 직전 정부 인사를 다시 기용한 것부터가 이례적입니다.

"보수·진보 구분 없이 기회를 부여하고 성과와 실력으로써 판단하겠다는 것으로, 이재명 정부의 국정 철학인 실용주의에 기반한 인선입니다."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송 장관의 경우는, 했던 말을 거두기가 불가능합니다.

윤석열 정부 때, 민주당이 바꾸려던 양곡관리법 등을 '농망 4법', '농촌을 망치는 법' 이라고 거부권을 건의했었죠.

"우리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법이고, 정말 이 재해대책법 두 가지는 정말 재해 수준의 법률이란 말이에요."

장관으로 유임되자 했던 말, 들어봅니다.

"철학을 바꿀 거예요, 안 바꿀 거예요?"
"당연히 국정철학에 맞춰서 바꾸어야 된다고."
"'농망법'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것에 대해, 절실함의 표현이 조금 거친 표현으로 된 것에 대해서는 사과 말씀을 드린다."

여야 비판을 떠나, 송 장관의 속내가 궁금합니다. 이전 정부 때 그렇게 목소리 높여 비판했던 '농망법'이, 지금은 '희망법'이 될 수 있는 건지. '공무원은 영혼이 없어야 한다'는 말을 신봉하는지, 본인도 그 말에 해당하는 '늘공'인지... 야당에서는 "소신껏 일해 왔던 다른 공무원들에 대한 모욕" 이라는데, 인정하는지...

장관쯤 되면,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과 운명을 같이 하는 게 상식입니다. 민주당 논리를 반박하라고 지시해놓고는 이제 와서 찬성 근거를 만들라고, 입이 떨어질지 모르겠습니다. 보통의 마음가짐으로는 하기 힘든 일입니다.

공자는 '사람이 믿음을 주지 못하면 그것이 옳은지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일국의 재상이 위정자 뜻대로 오락가락한다면 국정의 중심 잡기가 쉽진 않을 겁니다. 언제 또 변할지 모르니까요.

6월 26일 윤정호의 앵커칼럼, '처세의 달인'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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