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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통의 미학: 유니폼을 꿰뚫다] 오타니, 영웅의 완성과 '은의 영혼'

  • 등록: 2025.07.14 오후 13:49

  • 수정: 2025.07.14 오후 13:51

7월12일 LA다저스 vs 샌프란시스코 경기에 선발 등판한 오타니 쇼헤이. /로이터=연합뉴스
7월12일 LA다저스 vs 샌프란시스코 경기에 선발 등판한 오타니 쇼헤이. /로이터=연합뉴스

2025년 6월 16일(현지시간) LA 다저스타디움. 오타니 쇼헤이가 663일 만에 메이저리그 마운드 위에 섰다. 샌디에이고와의 홈경기에 선발투수로 등판해 1이닝을 던졌다. 투구수는 28개. 최고 구속은 시속 100.2마일(약 161.3km/h)을 찍었다.

그다음 등판은 6월 22일 워싱턴전 1이닝. 28일 캔자스시티를 상대로는 투구를 2이닝으로 늘렸다. 오타니는 차분하게 팔꿈치 수술 이후 막바지 재활 과정을 이행 중이다.

선발투수로 나서기 위해서는 던질 수 있는 투구수를 늘려야 하는데 리그 홈런 선두 등 타자로서도 엄청난 성과를 내는 오타니를 마이너리그로 내려 선발 등판을 위한 '투구 이닝 쌓기'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재활 과정을 실전으로 이행하는 특별한 전략이 나왔다. 경기를 여는 '오프너' 스타일로 나서 계속 투구수를 늘려가는 것이다.

오타니는 영웅답게 잘 해내고 있다. 구속은 팔꿈치 수술 전과 다르지 않고 투구시 릴리스 높이를 조금 낮춰 좋은 싱커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등 기술적으로는 더 성장한 모습까지 선보이고 있다. 7월 12일 샌프란시스코전에서는 1회 세 타자를 삼진으로 처리하면서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그러나 다저스 불펜에 부담이 쌓이는 것은 성과의 이면이다. 올 시즌 다저스는 블레이크 스넬과 타일러 글래스노우, 사사키 로키 등 선발 로테이션의 주축 선수들이 이탈한 상황. 오타니가 선발 등판하는 날은 선발 경험이 있는 투수들이 마운드를 이어받는데, 결국 다저스는 5일 간격으로 불펜투수들로 경기를 치르는 이른바 '불펜데이'를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가끔은 가능해도 계속되면 부하가 걸릴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다저스의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오타니가) 탄탄한 기초를 다질 수 있도록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다. 9월까지 5이닝은 던지지 않는다"라고 말해 오타니의 '이닝 제한'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투타겸업 '이도류' 오타니의 성과는 다저스 전체의 전략과 운용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다저스는 불펜 운용과 선발 로테이션을 조정하고 있고, 오타니의 완전한 복귀와 활약을 위해 이러한 조정 역시 감수하고 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인간의 영혼을 진리를 탐구하고 지배하는 이성(금), 명예와 용기를 바탕으로 수호하는 기개(은), 물질을 추구하면 복무하는 욕망(동)으로 구분했다. 그리고 각 계급이 자신이 타고난 본성에 따라 역할을 수행할 때 사회는 조화롭다고 말했다. 철인은 지배하고, 전사는 수호하고, 생산자는 복무한다. 플라톤이 꿈꿨던 이상적인 국가에서는 '모두가 주인공이 되려 하지 않는 것'이 조화를 낳는 첫 번째 조건이었다.

오타니는 '황금의 영혼'을 가진 자다. 그에겐 구단과 팬 모두가 바라는 궁극적인 서사가 있다. 야구 만화에서나 가능할 법한 '이도류'의 완성. 월드시리즈의 무대에서 선발로 나서고, 홈런을 치고, 다시 마운드로 올라가 경기를 끝낸다면, 그것은 신화다.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재배열되는 선수들, 특히 등판 일정이 바뀌거나 한 번씩 긴 이닝을 던져야 하는 상황에 투입되는 불펜투수들은 마치 '은의 영혼'을 가진 자들처럼, 오타니의 성공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밴드 비틀즈의 조지 해리슨도 그랬다. 그는 훌륭한 기타 실력은 물론 숱한 명곡들도 남겼지만 비틀즈라는 '완성된 조화'를 위해 자신을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 다음의 한 박자 뒤로 물러서 전체의 하모니를 완성했다. 위대한 밴드에는 위대한 세 번째 선수가 필요했던 것이다.

다저스도 밴드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오타니의 이도류 복귀를 위해 자신의 루틴을 바꾸고 있는 선수들이 있는 것이다.

야구가 기록의 스포츠이지만 팬들은 서사를 기억한다. 그리고 서사가 성립하기 위해선 '주인공'과 '조력자'가 모두 필요하다. 오타니가 완전한 선수로 돌아오는 장면을 팬들은 열광하지만 그 장면 뒤에는 단테 신곡의 베르길리우스처럼 지옥과 연옥의 길을 먼저 걷고도 사라지는 이들이 있다. 플라톤이 모두가 황금이 될 필요는 없다고 말했지만, 7월의 다저스는, 하나의 황금을 위해 여러 개의 은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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