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이란 낯선 이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을 일컫는 말로, 최근 MZ 세대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얼마전까지는 몽골이나 아이슬란드처럼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개인 단위 자유여행이 어려운 곳에서만 이루어졌지만 최근에는 대륙이나 도시를 불문하고 널리 유행하고 있습니다. 동행을 구하는 인터넷 카페도 있고, 대학 커뮤니티에서도 '마침 같은 도시에 있다면 하루 쯤 동행하고 싶다'며 동행할 선후배를 찾는 글이 즐비합니다.
이에 기성 세대는 '어떻게 생판 모르는 남을 믿고 함께 여행을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지만, 사실 대형 패키지 여행 역시 버스 옆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누구일지 모른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그 성질이 같습니다. 그렇다면 동행의 목적이 오롯이 비용을 절감하는 데만 있지는 않을 듯합니다. 그렇다면 MZ가 동행을 찾아 함께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TV조선 취재진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실제로 몽골 울란바토르 현지로 떠나 MZ의 생각을 물었습니다. 취재의 주된 목적은 최근 기승인 '동행 사기' 실태를 알기 위해서였지만, 먼저 '왜 동행을 떠나는지'부터 알아야 했습니다.
테를지 국립공원의 한 게르(몽골 전통가옥) 안에서 만난 정유찬(29·경남 거제시) 씨는 '왜 동행을 구해 몽골에 온 것이냐'는 기자의 물음에 “동행을 구하려는 동기 자체는 비용 절감이었다“면서도 ”막상 동행에 나서고 나니 비용 절감의 장점보다도 다른 직업을 가진 동행자들로부터 취업 정보나 산업 동향을 들을 수 있는 공부의 기회가 된 것이 더 큰 장점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한창 취업준비 중이거나 사회초년생인 MZ들은 다른 회사를 다니는 이들, 다른 직업을 가진 이들이 어찌 사느냐를 동행을 통해 배우고 진로에 참고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동행을 단순 '경비 절감'으로 보지 않고 '공유경제'나 '품앗이'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이번 동행에서 정 씨를 처음 만난 황호준(35·서울 강남구) 씨는 "저는 P 성향(MBTI 유형 중 즉흥형)이라 계획을 잘 못 짜는데 J 성향(계획형)인 분들이 젊은 감각으로 알아서 여행 코스를 잘 짜주어 좋았다"며 "제 여자친구는 사진을 잘 찍으니 우리는 열심히 동행자들의 SNS에 남을 멋있는 사진을 찍어줄 수 있다"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만큼 관계가 단절된 요즘, 동행은 어쩌면 'MZ식 품앗이'였을지도 모릅니다.
동갑내기 친구 두 명과 함께 온 백세경(27·강원 강릉시) 씨도 이번에 김민규 씨 일행과 동행을 짜서 이곳 몽골에 왔습니다. 백 씨는 "몽골은 이동시간이 8시간씩 되는데 늘 같은 주제만 말하는 친구들만 있었다면 지루했을지 모르지만, 새로운 사람들로부터 신선한 충격을 받는 것도 동행의 매력"이라며 "오지를 다니는 만큼 챙길 것도 많은데 서로 역할과 준비물을 나눌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사기 예방도 철저히 했습니다. 김민규(27·서울 중구) 씨는 "사기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 그룹은 사전 모임을 갖고 서로의 신분을 확인하고 몽골로 왔다"며 "직접 사전 모임까지 가졌으니 패키지 여행보다도 더 믿음이 가고 사기 걱정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한창 인간 관계를 배우고 맺어야 했을 젊은 시절을 코로나19로 대면 접촉이 단절된 채 보낸 MZ에게 동행이란 낯선 이와의 접촉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는 장이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MZ들은 동행을 통해 저마다 '나눔'의 가치를 배우고, '시야'를 넓히고, '인간 관계'를 연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검증되지 않은 사람과의 동행이 주는 위험도 그저 기우에 불과하지만은 않습니다. 오늘(12일) 전북 전주지방법원에서는 한 인터넷 카페에서 아이슬란드 동행을 모집한다며 30명의 피해자로부터 80회에 걸쳐 4천여만 원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옥 모 씨의 첫 공판이 열렸습니다. 황갈색 수의를 입고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은 옥 씨는 36세의 무직 남성이었습니다. 4명의 피해자는 공판에 참석해서야 자신의 돈을 빼돌린 범인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옥 씨는 재판부에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싶고 최선을 다해 변제할테니 선처해달라"고 호소했지만, 검찰은 그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습니다. 취재진은 옥 씨에게 어째서 또래를 상대로 이런 범행을 저지른 것인지 묻고자 전주로 향했지만 구속 상태인 옥 씨에게 질의할 기회는 없었습니다.
취재진은 제보를 받은 몽골 동행 사기 피해자들의 다른 가해자에 대해서도 확인했습니다. 충북의 한 경찰서는 "대포통장 대여자는 전자상거래법 위반으로 조만간 송치할 것"이라면서도 "총책은 아직 추적중"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부산의 한 경찰서는 지난 5월 피해자에게 "혐의는 상당하나 단서를 찾지 못해 수사를 중지하겠다"며 수사결과 통지서를 보내왔습니다.
사람을 믿고 싶고 교류하고 싶었던 MZ들을 속인 범인들에 대해 아직 많은 경찰서에서는 이렇다 할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기대와 추억을 희생양 삼아 금전 욕구를 채우려는 범인들을 수사당국이 끝까지 추격하는 모습을 보여야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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