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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통의 미학: 유니폼을 꿰뚫다] 영입의 기술

  • 등록: 2025.08.25 오후 14:59

  • 수정: 2025.08.25 오후 15:04

성능 좋은 이어폰을 귀에 꽂고 나면 곧바로 이어폰 밖의 소리가 차단되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노이즈 캔슬링' 기술이다. 이 기술에는 물리적 차단 외에 하나가 더 붙어 있다. 외부 소음의 파형을 분석한 뒤 반대 파형을 생성해 소음을 상쇄하는 것이다. 이른바 '맞불 작전'이다.

상대의 강점을 그대로 두고 이길 수 없는 건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지워내야 한다. 호주의 우승으로 끝난 올해 농구 아시아선수권에서 우리 대표팀은 맞붙을 토대가 부족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레바논과의 예선전(8월11일)에서 선보였던 신들린 듯한 외곽슛 감각이 아까운 감정으로 남았을 정도다. 던지는 족족 쏙쏙 꽂히는 유기상, 이현중의 3점슛은 보는 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불꽃놀이 같던 감각은 사흘 뒤 촛불처럼 꺼졌다. 중국과의 8강전(8월14일)에서 고배를 들었다. 장신의 중국 대표팀이 활발하게 수비수를 바꾸는 '스위치 디펜스'로 우리 선수들을 막았고 강점이었던 우리의 3점슛 슛률은 12.5%로 그 경기 최대 약점으로 작용했다.

대표팀 안준호 감독은 제공권을 확보하지 못한 것을 패배의 첫 번째 원인으로 꼽았다. 우리에겐 '맞불 작전'을 펼 자원이 없었던 것이다. 매치업마다 장신의 수비수가 자리를 잡고 있었고, 결국 자신있게 외곽슛을 올라가지 못한 결과로 이어졌다. 대한민국 농구팀에는 든든한 장신의 자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다른 나라들이 귀화로 골밑을 채우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5세기경 신라에 불교를 전한 승려 묵호자(墨胡子). 고구려에서 왔다는 기록이 있지만 실제 고구려인인지는 불분명하다. 오히려 먹 묵(墨) 자에 오랑캐 호(胡) 자로 미루어 짐작해 서역에서 왔다는 해석이 흥미롭다. 역사에는 늘 그런 선택의 순간이 있다. 외래 사상에 대한 거부감, 당연히 있었고, 귀족들의 완강한 반대는 이차돈의 순교라는 극적인 사건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바로 그 희생 덕분에 불교는 공인됐고, 이후 석굴암과 불국사와 같은 세계적 유산을 남기게 된다.

일본 이시바 총리가 좋아한다는 카레라이스는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의 일환으로 서양식 장거리 항해를 시작했던 일본이 각기병(비타민 B1 결핍병)이라는 난관을 맞닥뜨린 과정에서 생겼다고 한다. 쌀밥만 먹던 오랜 식습관에다 밥값과 반찬값을 따로 지급한 통에 군인들이 반찬값은 저축하고 반찬 없이 밥만 먹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긴 항해에서 병이 자라났고, 병사들이 쓰러졌다. 그때의 해결책이 서양식 스튜를 일본식으로 변형한 카레라이스였다. 고기와 채소, 향신료를 쌀밥과 함께 먹게 한 것이다. 때로는 낯선 해법이 위기를 벗어나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잘못된 선택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슈퍼스타를 모으는 데 혈안이었던 2003년 레알 마드리드 사례가 딱 그랬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는 수비형 미드필더 마켈렐레를 팔고 공격형 미드필더 데이비드 베컴을 영입했다. 화려함 한 스푼을 장착했지만, 이 선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거부할 수 없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를 두고 "엔진을 잃은 벤틀리에 금색 페인트를 칠하면 무엇하나"는 지네딘 지단의 말은 지금 생각해 봐도 '명언'이다. 축구 경기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수비형 미드필더가 필요한 탓이고, 마켈렐레는 그런 선수였다.

2002년 한국 축구대표팀이 4강 신화를 이뤄낸 여러 이유 중 거스 히딩크 감독의 김남일 발탁도 맥락이 통한다. 연령별 대표팀으로 쭉 성장해야만 성인대표팀이 될 수 있었던 시절에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김남일이란 무명 선수의 선발은 다른 선수들을 어리둥절하게 했지만, 김남일이 대표팀에 왜 필요한 선수였는지는 이후 여러 차례 경기로 완벽하게 증명됐다. 2025년 현재,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가장 약한 포지션도 바로 수비형 미드필더다. 25일 발표된 축구대표팀 명단에 혼혈 선수 옌스 카스트로프(뮌헨글라트바흐)가 포함된 점도 고무적이다.

홍명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9월 A매치 2연전에 나설 대표팀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명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9월 A매치 2연전에 나설 대표팀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받아들이는 과정은 자주 저항을 동반하지만 꿰뚫어야 할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이 영입의 기술이다. 눈동자 색, 피부색은 상관없다. 신라의 불교처럼 세상을 바꿀 수도 있고, 카레라이스처럼 일본군을 버텨내게 할 수도 있다. 지금 대한민국 농구대표팀, 축구대표팀 상황이 딱 그렇다. 지금의 영입이 새 역사를 여는 '맞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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