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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 읽는 재미에 빠졌다"…MZ 세대 사이 '교환독서' 인기

  • 등록: 2025.09.05 오후 15:03

  • 수정: 2025.09.05 오후 16:02

빈 서점에 책들이 꽂혀 있는 모습 / 촬영: 박성환VJ
빈 서점에 책들이 꽂혀 있는 모습 / 촬영: 박성환VJ

서울 연남동의 한 서점엔 타인은 없고 타인의 흔적만 남아 있다. 시중 서점과 달리 메모와 띠지가 덕지덕지 붙은 50권의 책이 손님을 반긴다.

그 중 독일의 철학자이자 작가 페터 비에리의 <자기 결정>이란 책이 눈에 띈다.

책은 외부의 시선에 휩쓸리지 않고 행복하고 존엄하게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는데, 잘 살아보고 싶은 독자들의 메모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책 <자기 결정>에 독자들이 남긴 메모 / 촬영: 박성환VJ
책 <자기 결정>에 독자들이 남긴 메모 / 촬영: 박성환VJ

한 독자는 슬픈 감정을 다루는 법을 알려주는 다른 책을 추천하는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꼭 봐주세요”라 적힌 메모 아래엔 “추천 감사해요” “너무 좋네요” 등 '댓글'도 달렸다.

최근 MZ 세대를 중심으로 여러 사람이 같은 책을 돌려가며 읽는 ‘교환독서’ 방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SNS에 ‘교환독서’라는 해시태그를 입력해 검색하면 관련 게시글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책 같이 읽을 사람 다 모여”라는 문구가 적힌 교환독서 모임 참여자 모집 글부터 “서로 맞닿은 의견들을 보는 의견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는 소감 글까지 다양하다.

독자들끼리 해 오던 교환독서에 작가가 직접 참여한 사례도 있다.
 

이다 작가가 올린 이벤트 홍보 글 / 출처: 이다 작가 인스타그램
이다 작가가 올린 이벤트 홍보 글 / 출처: 이다 작가 인스타그램

일러스트레이터 이다 작가는 최근 새로 낸 책을 홍보하기 위해 교환독서 이벤트를 열었다.

독자가 책에 메모를 남겨 보내면 작가가 거기에 답을 달아 독자에게 돌려주는 이벤트인데, 많은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교환독서가 이처럼 인기를 끄는 데 대해 연남동 무인 서점을 운영하는 박태희 씨는 “연결되는 느낌을 받고 싶어하는 2030세대 독자들이 많이 찾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바로 이 ‘연결되는 느낌’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교환독서에 발을 들이고 있다.
 

까망돌도서관 사서 백성희, 현명진 씨(왼쪽부터)
까망돌도서관 사서 백성희, 현명진 씨(왼쪽부터)

서울 흑석동 ‘까망돌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는 백성희, 현명진 씨도 “같이 읽는다는 느낌을 확 받아서” 교환독서에 빠지게 됐다.

백씨는 “사서로 일하며 수많은 책을 읽는데, 이렇게 책을 재밌게 읽어본 건 처음”이라며 “책에 남겨진 밑줄이나 하트 표시 같은 작은 반응들을 보며 읽으니 독서 행위 자체를 새롭게 즐기게 됐다”고 말했다.
 

소설 <긴긴밤>에 사서들이 남긴 밑줄과 메모
소설 <긴긴밤>에 사서들이 남긴 밑줄과 메모

최근 한 어린이문학상에서 대상을 받은 루리 작가의 소설 <긴긴밤>에는 백씨와 현씨 등 사서 6명이 남긴 밑줄과 메모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날지 고아원에 남을지 고민하는 주인공에게 할머니 코끼리가 “더 넓은 세상으로 가라”며 “우리가 너를 만나서 다행이었던 것처럼, 바깥세상에 있을 또 다른 누군가도 너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여기게 될 것”이라 말하는 부분에 가장 많은 ‘댓글’이 달렸다.

“이보다 더 멋진 격려가 있을까” 하는 공감부터 “내가 주인공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고민까지 다양한 반응이 책의 여백을 채웠다.

현씨는 “평소엔 전혀 하지 않았을 이야기도 교환독서 덕분에 나누게 된다”며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고민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타인의 흔적만 남은 책에서 독자들은 타인과 더 깊이 연결된다. 지금 바로 책을 펴고, 밑줄을 긋고, 메모를 남기고, 친구와 돌려 읽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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