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장면은 지난 8일 전북과 대전 경기에서 나왔다. 전북이 2-1로 앞선 후반 추가 시간, 대전 선수가 페널티박스 안에서 핸드볼 파울을 저질렀지만 주심은 이를 지나쳤다. 전북 코치진이 거세게 항의하자 VAR(비디오 판독)에 들어갔고, 결국 페널티킥 선언. 그러나 여전히 격앙된 전북의 타노스 코치가 항의 과정에서 양손 검지를 자신의 눈 주위에 갖다 대는 행동을 했다.
타노스 코치는 "(경기를) 똑바로 보라"는 의미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른바 '눈 찢기'로 불리는 아시아인 비하 행동과 유사해 인종차별 논란이 일었고, 현장의 심판 역시 이를 '눈 찢기'로 받아들이며 반응했다.
사진만 놓고 보면 양쪽 눈을 가리켰는지, 실제로 눈을 찢는 제스처였는지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영상에서는 양손 검지 끝의 궤적이 얼굴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미세하게 이동하는 장면이 확인된다.
그런데 여론은 뜻밖의 방향으로 흘렀다. 숱한 오심 논란에는 좀처럼 입장을 내지 않던 프로축구심판협의회가 한국프로축구연맹 상벌위가 열리기도 전인 지난 12일, 타노스 코치의 행동을 인종차별로 단정하고 FIFA(국제축구연맹)에 제소하겠다고 성명을 냈기 때문이다. 팬들은 이 장면에서 시쳇말로 '내로남불'을 떠올렸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19일 전북 타노스 코치에게 5경기 출장 정지와 2000만원 제재금을 부과했다. 연맹은 그의 행동을 인종차별 행위로 판단했다.
그러나 다수 팬의 시선은 달랐다. 전북 응원단은 "통상적인 항의 제스처를 인종차별로 둔갑시켰다. 심판들은 반복되는 오심엔 침묵하면서, 자신을 향한 정당한 항의에는 권위를 내세워 칼을 휘둘렀다"며 징계 철회를 요구했다. 권위주의에 찌든 심판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는 이른바 '역풍'이 분 것이다.
단순한 항의였는지, 인종차별 의도가 있었는지 논란은 이어졌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남는 상황이긴 하다. '눈을 향한 검지 제스처'라는 새로운 마지노선. '뉴 노멀'의 출현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다. 규범은 한 번 설정되면 후퇴하지 않는다. 그 범위에 따라 향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아노미(anomie)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규범의 윤곽이 분명해야 공동체는 유지된다. 규범이 흐려지는 순간부터 공동체의 일관성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뒤르켐이 경고한 아노미의 위험은 ‘규범이 완전히 붕괴된 순간’이 아니라, 작동 방식이 변질되기 시작하는 첫 순간에 있다. 선이 흐려지면 사람들은 그 경계를 각자 재해석하고, 그 재해석이 쌓이면 공동체는 더 이상 하나의 규범을 공유하지 못한다.
'새로운 행동의 가능성'이 열리면 그것은 곧 '선택 가능한 옵션'이 된다. 선택이 가능한 규범은 공동체의 기준으로서 기능을 상실하기 쉽다. 그런 점에서 연맹에게는 선을 분명히 그은 판단이 필요했을 듯싶다.
축구는 이미 규범이 미끄러지는 과정을 경험한 바 있다. '헐리우드 액션', 본질적으로 비신사적이고 지금은 제재 사유도 충분하지만, 한때는 '그냥 넘어가는 암묵적 관용'이었고 결국 하나의 전술로까지 활용됐다. 규범은 한 번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예상보다 더 빠르게, 더 멀리 쏟아진다.
지금이 그 미끄러짐의 첫 순간일지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직감이 든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이렇게 생겨난 새로운 노멀은 곧 리그의 문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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