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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김지미 미국서 별세…향년 85세

  • 등록: 2025.12.10 오전 11:38

  • 수정: 2025.12.10 오후 12:17

사진은 2017년 6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특별전 기자간담회 당시 배우 김지미(오른쪽), 사진 왼쪽은 김씨가 전성기였던 1975년 대종상 시상식 당시 여우주연상을 탔을 때 모습. /연합뉴스
사진은 2017년 6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특별전 기자간담회 당시 배우 김지미(오른쪽), 사진 왼쪽은 김씨가 전성기였던 1975년 대종상 시상식 당시 여우주연상을 탔을 때 모습. /연합뉴스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리는 원로 영화배우 김지미(김명자)가 향년 85세로 별세했다.

10일 영화계에 따르면, 김지미는 미국에서 눈을 감았다.

한국영화인협회는 영화인장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40년 충남 대덕군에서 출생한 김지미는 1957년 덕성여고 재학 중 김기영 감독에게 길거리에서 발탁돼 같은 해 '황혼열차'(1957)로 데뷔했다.

이듬해엔 서울신문 인기 연재소설인 박계주 원작의 '별아 내 가슴에'를 홍성기 감독과 함께 작업했고 이 영화로 언론과 대중의 호평을 동시에 받으며 스타덤에 올랐다.

예명 '지미(芝美)'의 의미처럼, 난초를 닮은 청초함의 대표주자로서, 임권택 감독의 '비구니'(1984) '길소뜸'(1985)를 비롯해 700여 편에 출연했다.

특히 '비구니'는 당시 미국에서 자녀 교육에 신경 쓰던 김지미의 영화 복귀작으로, 삭발 연기가 화제가 됐다.

한국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온 몸으로 표현한 '길소뜸'도 고인의 대표작이다.

이 외에도 '티켓'(1985·감독 임권택), '명자 아끼꼬 쏘냐'(1992·감독 이장호) 등을 제작했다.

1990년대 이후로는 영화인협회 이사장,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대위 공동위원장,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등을 맡아 영화계 발전에 힘 썼다.

2002년 영화진흥위원회 내외의 갈등으로 위원 자리에서 물러났고 이후 미국으로 건너갔다.

2010년에는 부산영화제에 김지미 회고전이 마련됐다.

대한민국 보관 문화훈장(1987), 제12회 춘강상 예술부문 대상(1987) 등을 받았으며 1997년엔 러시아 연방 국립영화대학 명예 영화학박사를 취득했다.

자신을 스타덤에 올린 홍성기 감독, 배우 최무룡, 가수 나훈아, 부모의 주치의 등과 네 번 결혼하고 네 번 이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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