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샐러리캡, 옵션, 세금 등 프로스포츠는 늘 숫자로 설명된다고 하지만 '라건아 소송'은 다른 영역을 정면으로 건드렸다. 4억 원이라는 액수보다 훨씬 비싼 것이 무엇인지, 프로스포츠가 무엇으로 유지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라건아가 KCC 소속이던 2024년 1월부터 5월까지의 소득에 대해 종합소득세 4억 원 가량이 발생했다. 세금을 탈루하고 해외로 가버리는 1년짜리 외국인 선수가 상당수지만, 라건아가 다시 한국에서 뛰려면 이 부담을 반드시 해결해야만 했다. 사건은 그 비용을 라건아가 직접 감당하면서 시작됐다.
KBL에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국제표준', 외국인 선수 세후 계약에 따르면 이는 구단이 부담해야 할 성격의 돈이었다. 라건아와 KCC의 계약서에도 이 내용은 명시돼 있다. 여기에다 하나 더. 프로농구는 가을에 시작해 이듬해 봄에 끝나는 추춘제 리그다. 세금은 연 단위로 부과되고, 선수는 시즌 이후 유니폼을 갈아입기도 한다. 이 불일치를 메우기 위해 KBL은 '현재 소속 구단이 부담한다'는 관행으로 분쟁을 예방해 왔다. 2024-2025 시즌 도중 2개 구단이 라건아를 대체 외국인 선수로 알아봤다가 세금 4억 원 때문에 포기한 사례도 있었다.
각 구단은 지난 5월 라건아의 세금이 영입에 걸림돌이 되자 단장으로 구성된 이사회를 열어 "해당 연도 소득세는 최종 영입 구단이 부담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새로 영입하려는 구단에서 세금을 낸다는 말이다.
리그라는 공동체가 스스로 만든 약속이었지만 그 약속은 시험대에 오르고 말았다. 라건아를 외국인선수로 영입한 한국가스공사가 그 세금을 대신 내지 않았고, 라건아가 직접 세금 4억 원을 냈다. 그리고 라건아는 전 소속팀 KCC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연맹은 중재안을 내놓았다. 규정대로 한국가스공사가 부담하거나, 선수에게 소송 취하를 권고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가스공사의 답변은 명확했다. "이미 낸 세금을 어떻게 하느냐, 소송은 선수의 자유의사이며, 제재가 있다면 그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것이었다.
홉스가 말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고개를 든다. 공동체가 존재하는 이유는 자연 상태로의 추락을 막기 위해서인데, 규정과 합의가 있지만 각자가 '최후의 무기'로만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순간 리그는 단순한 이해관계의 집합체로 전락한다.
칸트가 경고한 '정언명령의 붕괴'에도 가깝다. 내가 한 선택이 모두의 보편적 규칙이 되어도 괜찮을까. 한국가스공사의 선택이 전체에 적용된다면, 향후 이사회 결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구단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신뢰는 에너지를 들여 유지해야 하는 질서다. 4억 원을 비용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선택은 구단의 에너지 소비를 아주 효율적으로 줄인 것처럼 보이지만 시스템 전체의 무질서를 급격히 증가시킬 수밖에 없다. 시스템 전체를 유지하는 데 대한 마음이 없다면, 그 시스템에 더 이상 속하고 싶지 않다면, 덧붙일 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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