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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경 대령 부임 나흘 만에 남로당 '숙청 지령'…대규모 민간인 희생자 발생은 사망 넉 달 뒤

  • 등록: 2025.12.16 오후 21:36

  • 수정: 2025.12.16 오후 21:39

[앵커]
정부가 고 박진경 대령이 제주 4·3 사건 당시 강경 진압 책임자라는 이유로 국가 유공자 지정을 취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 쟁점은 박 대령이 민간인 학살에 실질적인 책임이 있느냐, 이 부분입니다. 박 대령이 남로당 부하들에게 암살되기 전후 상황을 보면, 책임자라고 단정하기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최원국 기자입니다. 
 

[리포트]
박진경 대령은 1948년 6월 18일, 남로당 조직원인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에게 암살됐습니다.

손 하사는 박 대령 살해 사건 재판에서 "30만 도민에 대한 무자비한 작전명령이 암살 동기"였다고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남로당이 작성한 '제주도 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엔 이같은 진술과 다소 배치되는 대목이 확인됩니다.

1948년 5월 10일 대책회의에서 "반동의 거두 박진경 이하 반동 장교들을 숙청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5월 6일, 박 대령이 제주도 9연대장에 취임한 지 나흘 만입니다.

박 대령이 제주에서 본격적인 진압작전을 펼치기도 전부터 남로당이 위협 인물로 판단하고 암살을 계획한 겁니다.

또 진압 과정에서 대규모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하기 시작한 건 10월 말로, 박 대령 사망 약 넉 달 뒤입니다.

2003년 정부가 발간한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도 박 대령의 민간인 학살 책임에 대한 증언이 엇갈립니다.

나종삼 / 前 제주 4·3 위원회 전문위원
"부임해서 약 43일간 있다가 6월 18일 암살됐는데 약 한 달 반 정도 있었습니다."

그 기간에 작전을 하긴 했지만은 얼마나 했겠습니까? 국방부는 국가보훈부 등 유관기관과 협의해 유공자 지정의 근거가 된 무공훈장 취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정빛나 / 국방부 대변인
"1950년에 서훈된 것이기 때문에 사실 지금 자료 확인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고요."

유공자 지정 취소를 검토하라는 대통령 지시로 객관적 조사와 연구가 필요한 역사 논쟁이 정치적 논란으로 변질되고 있단 지적이 나옵니다.

TV조선 최원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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