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이 미국을 향해서는 관계 개선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한국에 대해서는 “철저한 적대국, 영원한 적”이라고 규정했다. 노동당 제9차 대회에서 향후 5년 노선을 제시하는 총화 보고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파장이 적지 않다.
26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당대회 보고에서 “만일 미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에 명기된 우리 국가의 현 지위를 존중하며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철회한다면 우리도 미국과 좋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조미관계의 전망성은 미국 측의 태도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고 했다.
북한이 언급한 ‘헌법에 명기된 현 지위’는 핵보유국 지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가 아니라,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야 협상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대조선 적대시정책 철회’는 대북 제재 해제, 한미연합훈련 중단, 전략자산 전개 중단 등을 포괄하는 요구로 분석된다.
이는 김 위원장이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만약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한 데 기초하여 우리와의 진정한 평화 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힌 것과 맥을 같이한다.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와 북러 밀착, 국제 정세 변화 속에서 협상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김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해 사실상 공을 넘긴 모양새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 31일∼4월 2일 방중할 예정으로, 이를 계기로 북미 대화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반면 한국에 대해서는 한층 강경한 표현을 동원했다. 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조선반도에 존재하여온 비정상적인 관계에 역사적 종지부를 찍고 한국과의 관계를 가장 적대적인 국가 대 국가간 관계로 정립하는 최종적인 중대 결단”을 지적하며 “불변한 원칙적 입장을 천명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한국을 철저한 적대국, 영원한 적으로 다루어나가려는 우리의 결심과 의지는 강고하며 결론적”이라고도 했다. 남북을 통일 지향의 특수관계로 보지 않겠다는 ‘적대적 두 국가론’이 전술이 아닌 최종 노선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대북 신뢰 회복 조치에 대해서도 “서투른 기만극이고 졸작”이라고 평가절하하며 “가장 적대적인 실체인 대한민국과 상론할 일이 전혀 없다”고 했다. 한국의 군사훈련을 겨냥해 “핵보유국의 문전에서 실행되는 한국의 부잡스러운 행동이 우리의 안전환경을 다쳐놓는 행위”라며 무력 행사를 통한 ‘완전붕괴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또 “남부 국경지역의 모든 연계 통로와 공간을 물리적으로 완전히 차단하기 위한 법률적, 행정적 조치들을 연이어 강구하였다”고 밝혀 휴전선을 사실상 국경선으로 규정하는 영토 조항 제도화 가능성도 시사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북미회담 등에 한국은 개입하지 말라는 메시지와 함께, 한국을 적대국으로 규정해 핵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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