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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배터리를 속인 벤츠가 오히려 억울하다 한다

  • 등록: 2026.03.14 오후 15:23

  • 수정: 2026.03.14 오후 15:40

TV조선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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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 한 대가 불탔다. 차 한 대의 화재는 삽시간에 주변 70여 대를 전소시켰고 200여 명의 주민이 한밤중에 대피해야 했다. 참혹한 사고였지만 이 화재가 없었다면 더 위험한 진실은 훨씬 오래 숨겨져 있었을 것이다. 불이 꺼진 자리에서 드러난 것은 배터리 제조사였다. 소비자들이 알고 있던 것은 세계 최대 배터리 기업 CATL이었다. 그러나 잔해 속 배터리는 전혀 다른 회사, 파라시스(Farasis) 제품이었다. 파라시스는 2021년 중국에서 화재 위험을 이유로 리콜 이력이 있는 업체였다. 소비자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당시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표시는 법적 의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TV조선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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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아닌 기획, 기만의 설계도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가 밝혀낸 것은 단순한 누락이 아니었다. 공정위가 파악한 법 위반 기간 벤츠는 파라시스 탑재 차량 약 3,000대를 판매해 2,81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동안 딜러들에게 'EQ 세일즈 플레이북'이라는 내부 지침을 배포했다. 이 지침은 정교했다. 첫 장에는 CATL의 중국 시장 점유율 52.1%를 큼직한 파이 차트로 내세우며 '업계 최고 기술'이라고 홍보했다. '배터리 생산지에 대한 불신'을 고객이 제기할 경우에 대비한 Q&A 스크립트도 있었다. 거기에는 "얇은 배터리 셀만 CATL에서 공급받고 있다"는 공정위가 거짓(또는 기만)으로 판단한 답변이 적혀 있었다. 심지어 교육 자료는 안전성이 높은 '각형' 배터리 특징에 붉은 테두리를 치며 강조했다. 실제 탑재된 파라시스 배터리는 외부 충격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파우치형'이었는데도 말이다.
 

TV조선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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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심각한 것은 이 지침이 본사의 공인 아래 작성됐다는 사실이다. 벤츠코리아가 지침을 사전 보고하자 독일 본사는 제지하기는커녕 '우수 사례(Best Practice)'로 선정해 다른 국가에까지 전파하고 내부 플랫폼 게재를 승인했다. 현장 딜러들은 본사가 짜놓은 거짓 서사를 고객에게 전달하는 도구가 됐다. 황원철 공정위 상임위원은 이번 제재를 "자동차 제조·판매업자가 배터리 셀 제조사 정보를 은폐해 소비자를 기만한 행위를 제재한 첫 사례"라고 규정했다. 딜러를 수단으로 삼아 소비자를 기만한 경우에도 제조·판매업자가 부당 행위의 주체임을 명확히 한 판단이기도 했다.

반성 없는 입장문이 말해주는 것

공정위는 벤츠코리아와 독일 본사에 112억 3,9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허용되는 최대치인 매출액의 4%를 적용한 결과다. 벤츠코리아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회사 측은 "위원회의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다", "언론과 고객에게 올바르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다"고 반박했다. 또 "높은 수준의 기업 윤리와 책임을 가지고 있다"며 행정소송 등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이 입장문이 실망스러운 것은 단순히 사과가 없어서가 아니다. 딜러 지침에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 독일 본사가 그것을 어떻게 다뤘는지, 화재가 일어난 뒤에도 정보 공개를 스스로 하지 않다가 여론이 들끓자 8월 13일에야 배터리 정보를 공개한 경위가 무엇인지가 빠져 있었다. 또 이 모든 사실이 기록으로 남아 있음에도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소비자보다 법정에서 이기는 것을 먼저 계산한 기업의 태도다.
 

TV조선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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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억은 벌금인가, 비용인가

숫자를 나란히 놓으면 문제가 선명해진다. 기만 판매로 올린 매출은 2,810억 원. 부과된 과징금은 112억 원. 단순 비율로 따지면 매출의 4%다. 법이 허용하는 최대치를 적용했음에도 기만 행위로 얻은 이익에 비하면 이 처벌은 비즈니스 비용의 영역에 머문다. 재발 억제력이 작동하려면 위반으로 얻는 이익보다 처벌이 커야 한다. 지금의 구조는 그렇지 않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피해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것이 없다는 점이다. 과징금은 국고로 귀속된다. 파라시스 배터리가 탑재된 차를 CATL 탑재 차량으로 알고 구매한 3,000명의 소비자들이 실질적인 구제를 받으려면 별도의 민사소송을 거쳐야 한다. 이 구조에서는 기업이 기만을 선택할 유인이 줄지 않는다.
 

TV조선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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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

이 사건은 이미 하나의 변화를 이끌었다. 2024년 11월 국회를 통과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으로 배터리 실명제, 즉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정보 의무 공개가 마침내 법제화됐다. 허위 또는 미공개 시 과태료까지 부과된다. 뒤늦었지만 참혹한 화재 한 건이 바꿔낸 의미 있는 성과다. 그러나 정보 공개 의무만으로는 부족하다. 고의적이고 조직적인 기만 행위가 소비자의 생명 안전과 직결되는 경우 현행 과징금 체계는 억지력을 갖추지 못한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통해 기만으로 축적된 수익을 철저히 환수하고 그 재원이 피해 소비자에게 실질적으로 돌아가는 구조가 필요하다. 기업의 신뢰는 위기 때 쌓인다. 벤츠는 화재 직후 자진해서 배터리 정보를 공개하고 소비자 앞에서 책임을 인정할 기회가 있었다. 그 선택을 하지 않았고 지금도 하지 않고 있다. 시장에서 프리미엄을 요구하는 브랜드라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의 기준도 감수해야 한다. 그것이 정직한 거래의 최소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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