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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아들의 국어 점수를 훔쳐 간 '길냥이'

  • 등록: 2026.04.29 오후 17:06

  • 수정: 2026.04.29 오후 17:08

퇴근길, 현관문을 열자마자 중간고사를 치른 아들이 억울한 표정으로 묻는다.

“아빠는 ‘길짐승’ 알아?”

당연한 걸 왜 묻나 싶어 답하려던 찰나, 아들의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시험에 나왔는데, 난 당연히 ‘길냥이’처럼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떠돌이 동물인 줄 알았지. 근데 아니래.”

묘하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길짐승’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단어로, 땅에 붙어 기어다니며 사는 짐승을 이르는 말이다. 18세기 문헌에서도 확인되는 ‘뼈대 있는’ 우리말이다. 반대말은 ‘날짐승’이다.

하지만 ‘길냥이’라는 표현에 익숙한 아들에게 ‘길’은 ‘기어가는’ 움직임이 아니라 ‘도로’의 의미로 먼저 읽혔을 것이다. ‘들짐승’이나 ‘산짐승’처럼 서식지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했을 가능성도 크다. 출제 의도를 떠올리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요즘 아이들의 문해력이 떨어졌다고 쉽게 말하지만, 문제를 그렇게 단순화하기는 어렵다. 신조어 자체가 나쁘다고 보기도 힘들다. 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하고, 새로운 표현은 늘 생겨나기 마련이다. 신조어는 언어의 노화를 막는 활력소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문제는 그 속도와 방법이다. 기존 어휘가 지닌 맥락과 의미를 충분히 음미할 틈도 없이, 사회적으로 논의할 여유도 없이, 더 자극적인 표현으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오답 하나에 풀이 죽은 아들을 보며, 점수보다 중요한 건 이번 기회를 통해 아는 것이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신(神) 중의 최고’라는 내신에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런 식의 위로는 통하지 않는다.

아들의 국어 점수를 깎아 먹은 범인은 누구일까. 오늘도 길거리를 떠도는 수많은 ‘길냥이’들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다. 어쩌면 단어의 맥락을 지워가며 더 쉽고 빠르고 자극적인, 소위 ‘가성비’ 좋은 표현만을 좇아온 우리의 그 성급함부터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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