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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호의 앵커칼럼] 7000p의 숙제

  • 등록: 2026.05.07 오후 21:51

  • 수정: 2026.05.07 오후 22:01

산 위에 눈이 켜켜이 쌓입니다. 겉으론 평온해 보이죠. 하지만 그 아래엔 이미 무너질 준비를 마친 눈층이 숨어 있습니다. 

"표면이 불안정해지면 눈사태는 시속 최대 80마일까지 속도를 내며 아래로 쏟아져 내려옵니다." 

스키 한 번, 작은 충격 하나가 거대한 눈사태를 부릅니다. 1920년대 미국도 그랬습니다.

주가는 치솟고, 소비는 넘쳤고, 사람들은 번영이 영원할 줄 알았습니다. '광란의 호황' 한복판에서 1929년 대공황이 들이닥쳤습니다. 

시장이 무섭게 끓어오를 때마다 "이번엔 다르다"지만, 경계를 늦춰선 안 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코스피가 '꿈의 고지' 7000대에 올랐습니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란 실력에 비해 우리 증시는 C+ 수준으로 평가됐었죠.

만성적 '코리아 디스카운트' 에서 벗어나는 흐름이 나타난 건 분명 반가운 일입니다.

이번 상승은 단순한 유동성 장세만은 아닙니다. 초유의 반도체 영업이익이 실적으로 장을 끌어올렸습니다. 새 정부가 증시 부흥을 위해 뒷받침한 정책도 밑거름이 됐을 겁니다.

"부동산 시장 안정의 효과가 코스피로 옮겨서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이런 식의 평가도 있습니다만, 흥겨운 축배 뒤의 그림자를 주목해야 합니다.

지금 코스피의 가장 큰 빛이 반도체지만, 가장 큰 그늘도 반도체입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두 종목 비중이 시가총액 절반에 가깝습니다.

올해 코스피 상승분의 70% 이상을 차지합니다. 올 1분기 경제 성장률 1.7%도 반도체를 빼면 0.8%로 떨어집니다. 반도체가 흔들리면 증시도 흔들리고, 수출도 흔들리고, 성장률도 흔들립니다.

대한민국 경제가 반도체라는 거대한 눈 산 위에 올라선 셈입니다. 이제 필요한 건 환호가 아니라 분산입니다. 제2, 제3의 반도체가 될 새로운 성장 동력을 키워야 합니다.

더 큰 문제는 증시와 민생의 괴리입니다. '닉스통'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SK하이닉스 주식 하나 없는 사람들이 느끼는 '통증', 상대적 박탈감 이랍니다.

증시가 펄펄 날아도 다른 이들의 세상이란 거죠. 고유가, 고환율, 고물가 3고가 서민을 짓누르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떤 정치인이 남대문 시장에서 "관광객이 이렇게 많은데 왜 장사가 안되냐"고 물었답니다. 붉게 타오른 증시판만 바라보다 골목의 민생 체감온도는 놓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눈산은 아름답습니다. 햇빛을 받으면 더 찬란합니다. 하지만 밑이 제대로 받쳐주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허물어질지 모릅니다.

증시의 봄이 민생의 봄으로 번지려면, 속부터 다져야 합니다.

5월 7일 윤정호의 앵커칼럼, '7000p의 숙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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