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 190cm의 건국대 출신 포워드 손창환(소노 감독)은 안양 SBS 선수로 1999-2000시즌부터 4년 동안 프로에서 뛰었다. 4시즌 통산 기록은 29경기 20득점. 경기당 평균 출전 시간은 3분 19초, 평균 0.7득점 0.3리바운드로 꼼꼼하게 둘러봐야 찾아낼 수 있는 수준의 기록이다.
하지만 은하를 붙들고 있는 진짜 힘의 상당 부분이 관측되지 않는 '암흑물질'일 가능성이 높다는 현대물리학 이론처럼, 손창환 감독의 이야기는 드러나지 않지만 구조를 지탱하는 힘에 가깝다.
전력분석원으로 시작한 그의 현역 은퇴 후 농구 인생은 특유의 성실함이 바탕이다. 인성 에피소드 하나. 2023년 캐롯 코치 시절이었다. 팀 운영난으로 월급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던 상황에서 입대를 앞둔 조한진과 박진철에게 밥을 사주고 싶다며 공사장 단기 아르바이트를 뛰었단다. 물론 사정을 전해 들은 선수들은 사양한 채 입대.
손창환 감독은 초보 감독답지 않은 디테일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듣는다. 2025-2026 포스트시즌 6연승으로 챔피언결정전에 오른 소노가 시리즈를 0-3으로 뒤진 4차전 종료 3.6초 전에 선보인 작전은 절정이었다. 80-80 동점 상황, 이정현이 3점 라인 쪽으로 이동해 공을 받는 척 페이크를 한 뒤 곧바로 골밑으로 파고들어 자유투를 얻어내 81-80 승리를 쟁취했다.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한 건 낭만적인 영웅주의보다는 냉전 시대의 치열한 기술 경쟁 속에서 수만 가지의 체크리스트를 완벽히 수행해 낸 공학적 성취의 결과물이었다. 손창환 감독의 3.6초는 수많은 변수를 관리한 준비, 디테일의 훌륭한 결과다.
챔피언결정전 반대편 벤치의 감독은 다른 유형이다. 신장 182cm의 연세대 출신 가드 이상민(KCC 감독). 한국 농구 역사 속 언제나 화려했던 이름 중 하나. 국가대표와 프로를 거치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쉰을 넘긴 지금까지도 팬클럽이 활동하고 있을 정도다.
지도 스타일 에피소드, 챔피언결정전 2차전 작전 타임 시간이다. 허재의 둘째 아들, KCC의 최고 연봉 선수 허훈이 광고판에 걸터앉아 크게 외친다. "스페인, 스페인픽앤롤만 한다니까, 얘들(소노 선수들)."
스페인픽앤롤은 스페인 국가대표팀의 대표적인 공격 전술이다. 기본 픽앤롤에 슈터가 추가 스크리너로 붙는 이중 스크린 플레이다. 외곽 슈팅과 스크리너의 골밑 침투, 이후 코너 3점슛까지 파생될 수 있는 현대 농구의 대표적인 연계 공격이다.
흥미로운 포인트는 이상민 감독의 반응이었다. 허훈의 되바라진 외침을 '쿨하게' 넘기고 연계된 대응 방법을 지시했다. "스위치(수비수를 바꾸는 전술) 할래? 슬라이스(스크리너 뒤로 빠져 공격수를 따라가는 수비)? 슬라이스로 해."
이상민 감독 역시 현역 시절 비슷했던 전례가 있다. 2008-2009시즌 KT&G(현 정관장)전에서 삼성 썬더스의 안준호 감독이 테런스 레더(T)를 활용한 'T 작전'을 지시한 뒤, "돼? 안돼?"라고 물었다. 이에 당시 이상민 선수는 "안돼~"라고 짧은 말로 대답. '소통형 작전 타임'이라는 평가와 함께 감독과 선수의 '선'이 무너졌다는 논란이 일었을 정도로 농구판에서는 유명했던 장면이었다.
지금의 이상민 감독이 '소통형 작전 타임'을 운영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워 보인다. 스타플레이어였던 그는 스타 선수들의 언어를 안다. 한신과 장량, 소하 같은 인재를 인정하고 활용할 줄 알았던 사마천의 <사기> 속 유방처럼 사람을 앞세우는 리더십이다.
손창환 감독은 선수 시절 부족했던 영향력을 디테일과 성실함으로 채웠고, 이상민 감독은 스타 선수들의 존재감을 인정하는 지도자가 됐다. 자신의 과거를 지도 철학으로 바꿔낸 결과다.
누군가는 중력처럼 팀을 붙들고, 누군가는 주변의 별들을 더 빛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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