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미국의 한 역사 선생님이 한 실험을 다룬 영화입니다.
"이 배신자를 어떻게 할까? 목을 매달아야 할까, 목을 잘라야 할까?"
독일인이 왜 나치즘에 그렇게 쉽게 휩쓸렸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거였죠. 이른바 '제3의 물결 (The Third Wave)' 실험입니다.
규율, 단결, 행동 같은 그럴듯한 구호가 붙자 아이들은 순식간에 순응합니다. 처음엔 장난 같았는데, 곧 비협조자를 감시하고, 반대하는 학생을 배척했습니다.
심지어 이들에게 폭력을 가하려고 해 단 5일 만에 실험은 중단됐습니다.
전체주의란 게 꼭 군홧발 소리와 함께 오는 건 아니었습니다. 집단을 통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희생양을 만드는 겁니다.
'저 사람만 문제다. 저 사람만 벌주면 된다.' 이런 식의 공포는 집단을 조용하게 만듭니다.
대북송금 사건을 수사했던 박상용 검사가 징계 직전입니다. 자백 요구, 음식물 제공, 접견 편의 봐주기가 사유랍니다.
민주당이 집요하게 밀어붙였던 이른바 '연어 술 파티'는 흔적도 없습니다.
그러자 검찰 내부망에 "나도 징계하라"는 글이 줄을 이었습니다. 한 검사장은 "피의자에게 커피도 타주고, 보이차도 줬다"고 항변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커피, 보이차 였을까요? 박 검사가 대북 송금사건 수사 검사가 아니었어도 이런 징계를 추진했을까요?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니, 응? 너희들을 세뇌하려는 거잖아!"
"넌 좀 앉아."
'제3의 물결' 실험에서 마르코는 라이어 벵어 교사가 결국 나치식 가치를 주입하고 있다고 항의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앉으라는 친구들의 반발이었습니다. 독재가 무서운 건, 반대자를 누르는 힘 때문만이 아닙니다.
옆 사람이 눌릴 때 나머지가 고개 숙이면 그때부터 진짜 힘을 얻습니다.
아인슈타인도 "세상은 악을 저지르는 자들보다, 악을 용인하고 방조하는 자들 때문에 더 큰 위험에 처한다"고 했습니다.
검찰 해체가 결정된 이후 검찰은 이미 파산청이 됐습니다. 대장동 사건,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 등은 더 다툴 의지를 포기했습니다.
칼이 칼집으로 들어가고, 방패를 손에서 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거악(巨惡)은 활개 치고, 소악(小惡)도 미소 짓고, 그 속에서 착한 이들만 서글퍼질 듯합니다.
5월 20일 윤정호의 앵커칼럼, '침묵의 청구서'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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