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위기는 한국 안보의 지리적 범위가 더 이상 한반도 주변 해역에만 머물 수 없음을 보여준다. 최근 한국 선사가 운항하는 나무호가 외부 공격으로 피해를 입으면서, 중동 해상위기는 더 이상 먼 지역의 분쟁이 아니라 한국 국민의 안전, 에너지 수급, 수출입 물류, 동맹 운용과 직결된 현실적 안보 현안이 됐다. 공격 주체를 신중하게 판단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신중함이 전략 부재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도 원거리 해상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원칙과 수단을 보다 체계적으로 마련해 나가야 한다.
호르무즈는 세계 에너지와 교역의 핵심 동맥이다. 한국은 원유와 가스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으며, 조선·해운·정유·석유화학·자동차 수출 역시 안정적인 해상교통로에 깊이 연결돼 있다. 호르무즈의 불안정은 단순한 해운 보험료 상승이나 항로 지연에 그치지 않는다. 해운 비용과 에너지 가격을 끌어올리고, 결국 국내 산업과 국민 생활 전반에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해상 위협은 단순한 군사 문제가 아니라 시장 심리와 경제 흐름을 흔드는 요인이다. 호르무즈가 한국 경제와 국민 생활에 직결된 핵심 해상교통로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의 대응은 우선 우리 국민과 선박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공격 주체와 의도를 성급히 판단하기보다, 조사 결과와 동맹·우방국과의 정보 공유를 바탕으로 사실관계를 차분히 확인해 나갈 필요가 있다. 선박의 위치 파악, 안전 항로 확보, 대피 항만 검토, 선원 보호, 보험·보상 문제는 하나의 위기관리 체계 안에서 다뤄져야 한다. 외교부, 국방부, 해양수산부, 산업통상자원부, 해운업계가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 대응하는 범정부 협업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중동 해상위기는 외교와 군사, 경제안보가 동시에 맞물린 복합 위기다.
동맹 기여와 신중한 군사개입 사이의 균형도 중요하다. 미국이 해상교통로 보호를 위해 동맹국의 참여를 요청할 경우 한국은 이를 기계적으로 거부하거나 자동으로 수용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한미동맹은 한반도 방위를 넘어 글로벌 공급망과 규칙 기반 질서의 안정에도 기여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다만 호르무즈 해역은 군사적 긴장이 높고 우발적 충돌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해역이다.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 조정이나 호르무즈 해역에서의 역할 확대는 기존의 대해적·상선보호 임무와 성격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국내적 절차와 국민적 공감대를 함께 고려하며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은 동맹 차원의 협력 필요성을 인정하되, 참여의 방식과 범위를 신중하게 설정해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상황의 전개와 위험 수준을 고려한 단계적 접근이 바람직하다. 초기 단계에서는 동맹·우방국과의 정보 공유, 해상 상황 감시, 한국 선박에 대한 위험 경보, 연락 채널 강화, 인접 해역에서의 안전 지원 등 비전투적이고 방어적인 조치부터 확대할 수 있다. 상황 전개에 따라 한국 선박의 안전 확보가 더욱 중요해질 경우, 청해부대의 역할과 지원 범위를 제한적으로 조정하는 방안도 논의될 수 있다. 다만 역할 확대를 검토할 경우에는 임무 범위, 지휘체계, 교전 기준, 종료 조건을 사전에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동맹 차원의 협력도 한국의 전략적 판단과 원칙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대응이 실질적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외교적 조율과 함께 해양안보 역량 강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원거리 해상교통로를 보호하려면 정책적 의지뿐 아니라 이를 실행할 수 있는 능력과 수단이 필요하다. 한국 해군도 이러한 안보 환경 변화에 맞춰 원거리 해역에서도 한국의 해양 국익을 보호하고, 우리 국민의 안전한 해양 활동을 지원할 수 있도록 기동함대 전력 증강에 꾸준히 노력해 왔다. 이는 한반도 주변 해역을 넘어 원거리 해양안보 상황까지 고려한 해군력 발전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럼에도 원거리 해양안보 수요에 충분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아직 보완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한국 해군이 원거리 해상교통로 보호, 해외 거점 활용, 교민 보호, 국제해양안보 협력까지 안정적으로 수행하려면 보다 지속적인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 대공·대드론 방어능력, 원해 작전 지속능력, 군수지원체계, 해상초계·감시정찰 능력, 함정 생존성, 다국적 연합작전 상호운용성은 더 이상 부가적 요소가 아니다. 역량과 수단이 뒷받침되어야 동맹국 및 유사입장국과의 협력 기회를 창출할 수 있고, 위기 상황에서 한국의 역할 확대와 실질적 기여도 가능해진다. 능력이 없는 협력은 선언에 머물고, 수단이 부족한 기여는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
외교적 대응 역시 보다 다층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 호르무즈와 홍해의 불안정은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해상교통로 안정에 이해를 가진 유럽과 인도·태평양 국가들이 함께 다뤄야 할 공동의 해양안보 과제다. 한국은 한미 협력을 기본 축으로 삼되, 유럽연합과 주요 유럽 해양국가, 일본, 걸프 국가들과의 협력망도 넓혀야 한다. 유럽은 홍해와 아덴만, 인도양에서 해상교통로 보호 경험을 쌓아 왔고, 한국은 조선·해운·항만·해군력 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는 강점을 갖고 있다. 호르무즈 위기는 한국과 유럽의 해양안보 협력이 선언적 수준을 넘어 실질적 정책 의제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다.
이번 사태는 한국의 국가안보전략이 한반도 중심 사고를 넘어 경제안보와 원거리 해양안보까지 함께 고려해야 함을 보여준다. 에너지 수송로의 불안정과 원거리 해양위기는 한국 안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병력 파견 여부에만 논의를 한정하기보다, 원거리 해상위기에서 한국이 국민과 경제를 보호하고 동맹과 국제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대응 원칙과 절차를 차분히 정비해야 한다. 호르무즈 위기는 한국 외교안보가 경제안보, 해양안보, 동맹 협력, 그리고 해군력 건설을 보다 유기적으로 연결해 나가야 함을 보여준다. 이번 사태는 원거리 해상위기에 대한 한국의 대응 전략을 점검하고 보완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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