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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흔들리며 다듬은 지난 공정위 1년

  • 등록: 2026.05.23 오후 14:43

  • 수정: 2026.05.23 오후 15:35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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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국무회의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민주권정부 출범 1주년 성과보고를 내놨다. 가장 앞자리에 놓인 것은 두 가지였다. 설탕·인쇄용지·밀가루·전분당 등 총 20조 원 규모의 역대급 담합 적발, 그리고 설탕 최대 26.5%, 라면 14.6%, 밀가루 8.1%까지 떨어진 장바구니 가격이 그것이다. 그 뒤를 가맹·하도급·중소기업 권리 강화가 받쳤다. 담합을 깨고 가격을 내리는 일이 의미가 작을 리 없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경쟁당국이 1주년 첫 성과로 장바구니 부담 인하를 내세우는 모습에는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본래 경쟁당국의 일은 시장의 경쟁 구조를 지키는 것이고 가격 인하는 그 결과로 따라오는 부수효과여야 하기 때문이다. 헤드라인이 뒤바뀐 인상이다.

정작 한 해 동안 공정위가 마주한 가장 무거운 사건들인 플랫폼 규제, 데이터 결합, 대기업 부당지원, 정보교환 담합 등의 결과는 보고 내용에 오르지 못했다. 일부는 사법부 검증대 앞에서 흔들렸고 일부는 이제 막 법원의 손에 넘어갔다. 시장의 핵심 자원이 데이터·정보·자본으로 옮겨가는 동안 공정거래법의 오래된 문법이 어디까지 따라갈 수 있는지를 시험받은 한 해였다.

무너진 자사우대 법리, 네이버 판결

청사 공기가 가장 무거웠던 순간은 지난해 가을과 겨울 사이에 찾아왔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네이버 쇼핑검색 알고리즘 사건의 과징금 266억 원을 파기환송했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11월에는 동영상 검색 사건마저 위법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두 판결의 핵심은 한 문장이다. 대법원은 "플랫폼이 경쟁사 제품을 자사 제품과 동등하게 취급할 의무는 없다"며 공정위 판단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검색 알고리즘 조정·변경 자체는 정상적 영업활동"이라며 알고리즘 개편 사실을 경쟁사에 알리지 않은 점도 문제 삼지 않았다.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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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직후 공정위는 별도 TF를 꾸려 대응에 들어갔다. 그만큼 충격이 컸다. 자사우대 행위에 대한 첫 본격 판례인 데다 쿠팡·배달의민족·카카오 등 유사 사건에 적용해 온 법리의 기둥이 한꺼번에 흔들렸기 때문이다. 서울고법에서 다투고 있는 쿠팡 검색 알고리즘 사건도 같은 논리로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뒤집어 보면 공정위 책임도 가볍지 않다. 알고리즘이라는 비가시적 행위에 자사우대 법리를 적용하면서 단순한 상단 노출 사실을 입증의 핵심으로 삼은 구성 자체가 빈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첫 본격 사건에서 사실관계와 경쟁제한 효과의 인과 사슬을 더 정교하게 짰어야 했다는 지적은 내부에서도 나왔다.

공정위 사건이 법원에서 뒤집힌다는 것은 단순한 패소 이상이다. 수년의 조사와 심의가 통째로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시장에서는 사실상 없던 사건이 되고 공정위 심결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래서 패소는 치명적이다. 플랫폼 경제가 깊어질수록 사건은 더 늘어날텐데 네이버 두 판결은 그 출발선에서 공정위에 가장 뼈아픈 상처로 남게 됐다.

데이터 결합을 처음 들여다보다, G마켓·알리

지난해 9월, 공정위는 신세계와 알리바바그룹의 합작에 시정조치를 내렸다. 산술적 점유율은 단순했다. 국내 온라인 해외직구에서 알리 37.1%, 지마켓 3.9%, 합산 41%로 나왔다. 그러나 공정위가 정조준한 것은 점유율이 아니라 두 회사가 들고 있는 데이터였다. G마켓은 20년 넘게 쌓은 5,000만 회원 정보를 보유한다. 우리나라 소비자의 소비 패턴이 통째로 들어 있는 자산이다. 알리익스프레스는 200여 국에서 누적된 구매 건수·평점·이미지 검색 데이터를 갖고 있고 모회사 알리바바그룹은 세계 최상위 수준의 클라우드·AI 기술력을 보유한다.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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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가 그린 시나리오는 구체적이었다. 두 데이터가 합쳐지면 이른바 도플갱어 광고가 가능해진다. 특정 소비자의 구매 패턴을 분석해 비슷한 사람들이 자주 사는 상품을 알리에서 매칭해 검색엔진·SNS 광고면에 띄우는 방식이다. 데이터 축적이 알고리즘 개선과 이용자 유입의 피드백 고리를 가속화한다. 중국발 해외직구가 2022년 35%에서 2024년 60%로 급증한 흐름까지 더하면 우려는 더 짙어진다.

처분은 정밀했다. 양사 국내 소비자 데이터를 기술적으로 분리하고 해외직구 시장에서는 상호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디지털 시장에서 데이터 결합 그 자체의 경쟁제한성을 본격 검토한 첫 사례다. EU가 2020년 구글-핏빗 결합에서 10년간 데이터 분리를 명령한 전례를 떠올리게 한다. 모처럼 공정위가 새 시대의 경쟁 자원을 제대로 짚어냈다.

대기업집단 규제의 두 얼굴

대기업집단 규제는 한 해 동안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지난해 12월, 기획재정부(지금의 재정경제부)·산업통상자원부(지금의 산업통상부)·공정위는 첨단산업에 한해 지주사 손자회사의 증손회사 지분율 의무를 100%에서 50%로 낮추기로 합의했다. 반도체·AI 분야의 천문학적 투자에 필요한 외부 자본을 끌어오라는 신호다. 다만 공정위가 그동안 지켜 온 금산분리·총수일가 사익편취 차단 명분을 한 차례 후퇴시킨 결정이라는 비판도 따랐다.

같은 기간 사법부는 공정위 손을 반복적으로 들어주지 않았다. 지난해 6월, 대법원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SK실트론 잔여지분 29.4% 인수에 대해 "사업기회 유용은 없었다"고 본 원심을 확정해 공정위 제재를 취소했다. 대법원은 이를 정당한 투자로 본 것이다. 이 사건의 무게는 단순한 패소 이상이다. 공정거래법상 사업기회 제공 조항을 총수일가 거래에 본격 적용한 첫 사례였기 때문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4대 그룹 총수로는 처음 공정거래위원회를 처음 방문해 당시 사건을 다투는 전원회의에 직접 출석해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첫 시도가 대법원에서 깨졌다는 사실은 향후 유사 사건의 입증 문턱을 한층 높여놨다. 지난해 11월에는 호반건설의 벌떼입찰 사건도 마무리됐다. 23개 유령 계열사를 동원한 공공택지 낙찰·전매에 부과된 과징금 608억원 중 365억원이 취소됐다. 부당승계 의혹의 핵심 행위 일부가 부당지원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TV조선 방송화면 캡처
TV조선 방송화면 캡처

반대편에서는 새 영역의 제재가 등장했다. 지난 7월, 공정위는 CJ와 CJ CGV가 부실 계열사 영구전환사채 발행을 돕기 위해 TRS(총수익스와프) 계약을 신용보강 수단으로 변칙 활용했다며 65억 4,1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자본잠식 상태의 계열사가 신용도 AA-인 CJ·CGV의 우산 아래 3%대 저금리로 거액을 조달했다는 것을 파생상품을 통한 위장 보증으로 보고 정면으로 겨눈 사건이다. 풀어줄 곳은 풀고 다잡을 곳은 다잡으려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부당지원·사업기회 법리가 잇따라 검증대에 오른 만큼 무리한 사건 구성과 정교한 법리 사이의 균형을 찾는 일이 다음 과제로 남았다.

담합인가 아닌가, 은행LTV

올해 1월에 마무리된 4대 시중은행 LTV 담합 사건은 여러 면에서 무게가 다르다. 2021년 12월 시행된 개정 공정거래법의 정보교환 담합 금지 규정이 처음 적용된 사건이자 금융권의 오랜 관행을 정조준한 첫 제재다.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의 LTV 담당 실무자들은 2022년 3월부터 약 2년간 서로의 LTV 정보를 교환했다. 전국 부동산을 종류별·소재지별로 잘게 쪼개면 적게는 736개, 많게는 7,500개에 이르는 정보였다. 공정위 조사를 보면실무자들은 직접 만나 인쇄물로 자료를 건네받았다. 회사로 돌아와서는 그 7500개 칸을 일일이 엑셀에 입력했고 받아온 종이는 곧바로 파기했다. 담당자 교체에 대비해 정보교환 담당자 명단과 교환 방법까지 적힌 인수인계 문서도 따로 만들었다. 한 실무자의 카톡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담합 이슈 때문에 파일로는 주고받지 못하고 하드카피본 받아 손으로 일일이 입력해 정리 중."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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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그 정성의 결과를 드러냈다. 2023년 기준 4대 은행 평균 LTV는 62.05%로, 정보교환에 참여하지 않은 비담합 은행인 기업·농협·부산은행의 평균은 69.52%였다. 격차 7.5%포인트다. 기업 대출과 직결되는 비주택 부동산에서는 8.8%포인트로 더 벌어졌다. 신용대출 한도가 좁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정확히 이 차이만큼 손해를 본 것이다. 과징금으로 총 2,720억원을 부과했다. 2024년 11월에는 전원회의에서 한 차례 재심사 명령까지 내려졌다. 새 법리를 처음 적용하는 만큼 공정위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한 흔적이다.

은행권은 즉각 반발했다. "위험 관리와 시장조사를 위한 정상적 정보 교환"이라며 행정소송에 나섰다. 결국 정보교환 담합 첫 사건의 운명도 법원으로 넘어갔다. 단순한 정보 교환과 담합 사이의 경계를 법원이 어떻게 그을지가 우리나라 경쟁법의 가장 큰 쟁점으로 떠올랐다. 네이버 판결이 보여 줬듯이 새 법리는 법원 단계에서 한 번 더 검증을 거쳐야 비로소 자리를 잡는다.

이례적 불허, 사모펀드의 1·2위 연쇄 인수

올해 1월, 사모펀드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가 롯데렌탈 지분 63.5%를 1조 8,000억원에 취득하려던 거래를 공정위가 금지했다. 어피니티는 이미 2024년에 SK렌터카를 인수해 보유 중이었다. 1·2위 사업자를 단기간에 연달아 사들이는 거래였다. 수치는 결합 후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직관적으로 보여 줬다. 단기 렌터카 내륙 시장에서 롯데 17.1%, SK 12.2%, 합산하면 29.3%다. 다음 사업자인 쏘카는 3.7%, 그 아래로 1% 미만의 영세 사업자가 1000여 곳이다. 결합 시 1위와 3위 사이에 7.9배 격차가 생긴다. 제주는 5.3배, 장기 렌터카에서도 두 회사 합산은 38.3%로 다음 사업자의 두 배가 넘는다. 공정위가 1500명 설문조사와 경제분석을 돌린 결과는 또렷했다. 결합이 진행되면 단기 내륙에서 SK 11.85~12.15%, 제주 10.45~11.00%, 장기에서 롯데 5.05~5.35%의 가격 인상 압력이 발생한다는 산출이 나왔다.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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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태적 조치로 풀 수 있지 않았을까. 공정위는 이 길을 검토하다 접었다. 심사관은 양사를 엄격히 분리해서 경영하는 등의 8개 시정조치을 걸고 조건부 승인의견을 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위원들은 사모펀드의 본질이 일정 기간 후 매각(buyout)인 만큼 시정조치의 영속성을 담보할 길이 없다는 게 핵심 이유였다. 공정위 기업결합 금지 9번째 사례였고 2024년 메가스터디교육-에스티유니타스 이후 약 2년 만이다. 사모펀드가 시장 1·2위를 연쇄 인수해 고가 매각을 노리는 거래 패턴 자체에 명확한 경고를 보낸 셈이다.

흔들리며 다듬는다

시장의 핵심 자원이 데이터·정보·자본으로 옮겨가는 시대에 진짜 헤드라인은 어디에 놓여야 할까. 가격 인하 성과가 1면을 장식하는 동안 정작 시대의 경쟁 구조를 결정짓는 사건들은 보고서에 실리지 못했다. 새 법리는 법원의 손에 넘어가 있고 옛 법리는 무거운 숙제를 안았다. 자세하게 쓰진 못했지만 동의의결에 따른 유튜브 라이트 출시, 티빙-웨이브의 합병,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마일리지 통합안 등 소비자 입장에서 의미있는 사건들도 적지 않았다. 시장은 가만히 공정위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플랫폼은 깊어지고 데이터는 결합되며 자본은 더 빠르게 움직인다. 지난 1년은 그 변화와 정면으로 마주한 시간이었다. 일부는 깨졌고 일부는 다듬어졌으며 일부는 아직 법원의 판단을 기다린다. 흔들리며 다듬는다. 다음 1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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