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 탓 안 하는 명장"…열악한 우즈벡서 가방에 바리바리 싸간 기구로 'K의료' 기적
등록: 2026.05.24 오전 11:30
수정: 2026.05.24 오후 12:33
[타슈켄트=이태형 기자]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 지난 22일 오전 8시, 기묘국제대학병원 수술실에서는 대한정형외과의사회 소속 한국 의료진이 48세 우즈베키스탄 여성 환자의 어깨 회전근개 파열 내시경 봉합 수술을 집도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보편화된 수술이지만, 현지 의료진에게는 아직 생소한 시술이다.
환자는 오랜 기간 극심한 어깨 통증을 겪어왔다. 약물치료와 물리치료, 수차례의 주사치료에도 차도가 없자 큰 비용을 들여 MRI(자기공명영상)를 촬영한 결과 어깨 힘줄인 극상근 파열을 확인했다. 수술이 시급했으나 현지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우즈베키스탄에는 관절경으로 고난도 어깨 수술을 시행할 수 있는 숙련된 의사가 드문 데다, 수술 기구와 필수 재료마저 가격이 비싸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에 사단법인 통일문화연구원 주선으로 한국 의료진과의 연결이 성사됐다.
이날 수술은 이봉근 한양대학교 정형외과 교수(정형외과의사회 학술이사)와 심상돈 동아병원원장 (광주 전남 정형외과 의사회 부회장)이 공동 집도했다. 현지의 수술 장비는 대형 구색은 갖췄으나 미세한 힘줄을 봉합할 세부 기구와 소모성 재료가 턱없이 부족했다. 수술에 필요한 핵심 의료기구 일부는 한국 의료진이 출국 전 국내에서 직접 준비해 가방에 싸 들고 와야 했다. 현지 관계자는 "장비와 인프라가 열악해 한국 의료진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는 환경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한국 의료진은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정밀한 수술을 이어갔다. 어깨 관절경 수술은 초소형 카메라로 좁은 관절 공간을 보며 찢어진 근육을 봉합해야 해 숙련도가 필수적이다. 수술을 지켜본 김형규 대한정형외과의사회 수석부회장은 "이봉근 교수와 심상돈 전문의 정도의 명장(名匠)이라면 날이 썩은 도끼를 줘도 나무를 베어내는 법"이라며 "실력 없는 이들이 도끼를 탓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수술실에 모인 우즈베키스탄 의사들은 한국 의료진의 수술 기법과 장비 운용법을 집중적으로 지켜봤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으며, 환자는 수술 직후 통증이나 부작용 없이 스스로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현지 의료 봉사를 이끈 김완호 대한정형외과의사회 회장은 TV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우즈베키스탄은 한국의 약 40년 전 경제 성장기를 떠올리게 하지만, 의료 인프라 측면에서는 아직 지원이 필요한 곳이 많다"고 진단했다. 김 회장은 지난해 5월 통일문화연구원과 함께 의약품 전달을 위해 처음 이곳을 방문한 뒤 실질적인 지원책을 고심해 왔다.
김 회장은 이번 행보가 단순한 일회성 봉사를 넘어 'K-의료의 브랜딩' 차원임을 명확히 했다. 그는 "한국 정형외과의 척추·관절 분야 수술 테크닉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해외 학회에 우리 의사들의 이름이 붙은 고유 기술이 등재될 정도"라며 "의료 정보는 전문 영역이라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울 뿐, 이번 수술처럼 현지 전문가들을 직접 설득하는 것이 진정한 메디컬 브랜딩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의사회는 향후 우즈베키스탄 의사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3개월씩 연수를 진행하는 등 선진 의료 시스템과 교육 노하우를 전수하는 'K-의료 협력 모델'을 구축하기로 했다. 최근 한국 의료계가 인력 수급 문제 등으로 의료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해외 현지 보건의료 협력과 인적 교류는 양국 모두에게 새로운 활로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민간 외교의 브릿지 역할을 한 라종억 사단법인 통일문화연구원 이사장은 “현재 세계는 전쟁과 갈등으로 격랑의 시대를 겪고 있지만, 이를 이겨내는 원동력은 결국 국가와 사람 간의 화합에 있으며 그 중심에 언어 교육과 의료 지원이 있다”며 “우즈베키스탄은 고려인 동포들의 역사적 터전이자 중앙아시아 진출의 거점인 만큼, 한국 의료 자산을 통해 양국의 우호 관계를 다지는 외교적 역할을 이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