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서울 종로 일대가 술렁였다. 형형색색 연등 사이로 마이클 잭슨 '빌리진'과 지드래곤·태양의 '굿보이' 노래가 울려 퍼졌고, 회색 장삼을 입은 한 승려가 절도 있는 춤사위로 무대를 뒤집어 놓았다. 누군가는 "스님 맞아?" 되물었고, 누군가는 "춤선 미쳤다"며 휴대폰을 꺼냈다. 그날 이후 스님 영상은 SNS 숏폼을 도배했다. '불교계 GD', '마이클 잭스님'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소요산 자재암 주지, 덕산스님 이야기다.
석가탄신일을 맞아 화제의 중심에 선 그를 만나, 파란만장했던 속세의 삶과 춤을 통한 수행, 그리고 이 시대 길 잃은 청년들을 향한 묵직한 메시지를 들었다.
춤으로 전한 진심…'덕산 지드래곤'이 되다
- 연등회 이후 반응이 뜨겁습니다.
"민망합니다. 아직 춤도 초보인데, 과하게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그런 반응을 보면서 '아, 젊은 사람들이 불교를 조금 덜 어렵게 느끼는구나' 싶어서 감사했습니다."
- '불교계 GD', '스드래곤', '덕산 지드래곤', '마이클 잭스님' 등등 수식어가 넘쳐나는데, 불리고 싶은 별칭 하나만 고르신다면요.
"덕산 지드래곤!"
- 1초 만에 바로 답하시네요?
"GD가 아주 인기가 많더라고요. 노래도 좋고, 굉장히 자유로운 느낌도 있고. 그분의 무대나 하는 말들을 유튜브로 다 찾아봤는데, 뭔가 마음에 힘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는 지드래곤 이야기를 할 때 유독 눈빛이 반짝였다. 단순히 유명 연예인을 좇는다기보다, 젊은 세대의 언어를 배우려는 사람에 가까워 보였다.
실제로 그는 "젊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부처님 법을 전할 수 있을까"를 오래 고민했다고 했다. 절에는 점점 노인들만 남고, 젊은 세대는 종교를 낡고 무거운 것으로 느끼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그렇게 선택한 언어가 춤이었다.
- 솔직히 마이클 잭슨 '문워크'랑 지디 '스웨그' 따라하는 것 중에, 어떤 게 더 수행 같으십니까?
스님은 한참 웃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둘 다 너무 힘들었습니다. 제가 원래 몸치인데, 나이까지 들어서 그런지 어떤 동작은 아무리 연습해도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잘하려고 하지 않고, 꾸준히 쉬지 않고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조금은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요."
실제로 그는 한 곡을 위해 두 달 가까이 매일 4시간씩 연습한다. 단원들과 합을 맞추는 날은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나머지는 대부분 혼자 반복 훈련이다. 장삼 자락이 얼굴을 가리고 동선이 꼬이는 상황까지 감안해, 혼자 승복을 입고 연습하는 날도 많다.
댄스팀명도 직접 만들었다. 이름은 '수리수리 마하수리'. 장난스러운 주문 같지만, 사실 불교 경전 '천수경'에 나오는 첫 대목이다.
- '수리수리 마하수리'를 춤추는 팀에 접목한 이유가 있으실 것 같아요.
"수리수리 마하수리는 '된다 된다 아주 잘 된다는' 뜻이고, 액운을 막고 복을 기원하는 주문입니다. 저는 불교가 어렵고 무겁게만 느껴지는 게 늘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에게는 일단 친근하게 다가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하면서 웃다가도, 그 안에 불교 의미가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 그 자체가 하나의 인연이지 않을까 싶어요."
무대 체질?…어릴 땐 사진도 못 찍던 소심한 소년
스님이 처음부터 법당 밖에서 춤을 췄던 건 아니다. 지금은 수천 명 앞에서 몸을 흔들지만, 어린 시절의 그는 정반대였다.
- 어린 덕산스님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낯가림이 심하고 소심했어요. 발표만 하면 다리를 덜덜 떨었고, 사람들 앞에 나가는 걸 굉장히 힘들어 했어요. 특히 사진 찍는 걸 싫어했어요."
- 사진은 왜요?
"'왜 못난 나를 찍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누가 저를 찍으려고 하면 고개부터 숙였어요. 땅만 본 거죠. 지금 생각하면 참 안타까운 이야기인데, 그 정도로 자존감이 낮았어요."
그는 3남 5녀, 여덟 남매 사이에서 다섯째로 자랐다. 형제들이 많으면 북적이고 따뜻했을 것 같지만, 정작 그는 어린 시절 내내 외로웠다고 했다. 혼자 있는 게 편했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는 게 익숙했다. 하고 싶은 것도, 꿈도 없었다.
16년 차 경찰공무원…왜 제복 대신 승복을 택했나
올해 1964년생인 스님의 속세 이름은 김호철. 출가는 마흔이 다 돼서 했다. 당시 은사스님께 받은 법명은 '덕산(德山)'. '덕을 산처럼 두텁게 쌓으라'는 의미다. 올해로 승려가 된 지 24년. 승복을 입기 전엔 제복을 입었다고 했다. 무려 16년 동안 경찰 공무원 생활을 했다. 경찰대 출신으로 경찰청과 관악서, 방배서 등을 거쳤고, 시위 진압 현장에도 있었다. 그의 부모는 그가 공직에서 크게 성공하길 바랐다. 남들이 보기엔 안정적이고 반듯한 삶이었다.
인생이 완전히 바뀐 건 어느 겨울이었다. 휴가를 내고 우연히 소요산에 있는 작은 사찰인 자재암에 오게 된 것. 일주일 동안 새벽 예불을 따라다니고, 눈 내리는 산길을 걸었다. 108배도 매일 했다. 그리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갔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계속 눈물이 났다.
- 많이 지쳐있었나 봅니다.
"그랬나봅니다. 심지어 직원들이 앞에 있는데도 눈물이 멈추질 않았어요. 너무 창피하고 민망해서 휴가를 한 달 더 냈어요. 실컷 울고 오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한달 뒤 다시 출근했는데도 또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죠. 경찰로서의 인연이 다했구나…."
- 왜 그렇게 눈물이 났던 걸까요?
"내 안에 쌓여있던 상처와 불안, 그리고 참회였을 겁니다. 속세에 있을 때 술도 새벽까지 많이 마셨고, 성격도 욱하는 면이 있어서 말도 함부로 했고요. 상처 준 사람들에 대한 사죄이자, 내 인생을 온전히 바로 살지 못했다는 반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제 자신을 제대로 마주했던 것 같아요. 불교적인 말로 '때가 된 것' 이었죠."
그렇게 결국 경찰 제복을 벗었다. 가족들은 이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출가할 때도 마찬가지. 모든 결정은 혼자 했다.
- 다른 것도 아니고, 출가를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았다는 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데요.
"저는 제 인생 행로에 대해서 미리 사전에 상의를 하거나 그러지는 않거든요. 내가 결정을 하면 그냥 혼자 가는 거니까…. 그냥 그렇게 집을 나왔던 것 뿐이에요."
- 부모님 반응은 어땠나요?
"사실 저희는 기독교 집안입니다. 집안에 목사님도 계시고, 전도사님도 계시죠. 온 집안이 독실한 크리스천인데 저만 유일하게 중이 된 거예요. 나중에 들어 보니, 부모님이 굉장히 절망하셨다고 하더라고요. 부모님 입장에서는 당연하죠. 잘 다니던 반듯한 직장을 갑자기 그만두고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갔으니까요."
- 출가 후 가족과는 언제 다시 만나셨어요?
"출가 후 10년 만에 제가 집으로 갔어요. 그때 제가 부모님께 건넨 첫 마디가 '이제는 저를 자식이 아니라 스님으로 보셔야 합니다' 였습니다. 그러면서 부모님께 삼배를 올렸죠. 부모님은 그저 아무 말 없이 보고만 계셨어요. 황당하셨겠죠. 10년 만에 와서는 '이제 나는 부모의 아들이 아니라 수행자의 삶을 살겠다'고 굳이 확인시켜드린 거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제가 참 불효자였습니다."
이 대화 후, 그는 한참 말없이 먼 산 쪽을 바라봤다.
춤은 방편일 뿐…"껍데기에 갇히지 않겠다"
출가 후 대구 동화사에서 4년을 수학하고, 팔공사 파계사, 상주 갑장사, 백양사 청류암 선방에서 홀로 수행한 스님은 지난 2023년, 처음 눈물을 쏟아냈던 이곳, 자재암에서 주지로 부임했다. 주지가 된 후 스님은 불을 댄 음식을 전혀 먹지 않고, 오직 과일과 채소, 생식만 고집하고 있다. 자연의 에너지를 그대로 섭취해야만 몸이 가벼워지고 장기가 맑아진다는 이유다. 한때 자재암에 진행했던 태극권과 요가 프로그램 역시 이러한 신체와 의식의 결합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절도 있고 기를 뿜어내는 스님만의 독보적인 안무 선은 10여년 간의 태극권 숙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를 바라보는 불교계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스님이 왜 유행가에 맞춰 춤을 추느냐', '종교의 권위를 떨어뜨린다'는 보수적인 비판이 잇따른다. 전통적인 문법을 깨부순 대가다. 하지만 스님은 단호하다. 그가 생각하는 종교의 진짜 권위는 높은 단상 위에서 엄숙한 표정으로 훈계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중생들의 눈물을 닦아줄 때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 스님의 행보에 대해 불편해하는 시선이 적지 않죠?
"당연히 불편할 수 있지요. 그런데 비를 예로 들어볼게요. 오랜 가뭄이 든 농부에게 비는 단비이지만, 소풍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에겐 나쁜 비가 됩니다. 하지만 비 자체에는 좋고 나쁨이 없어요. 인간의 입장과 생각에 따라 달라질 뿐입니다. 동작은 동작일 뿐이고, 춤은 춤일 뿐이에요. 부처님 법의 본질은 중생 구제와 상생입니다. 춤은 그 본질을 전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자 방편일 뿐이지요. 껍떼기 같은 형식과 권위에 갇혀서 정작 본질인 중생의 아픔을 외면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부처님 뜻을 거스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스님은 비판의 시선에 약점 잡히지 않기 위해 새벽 예불과 참선 수행을 누구보다 철저히 지켜낸다. 홀로 조용히 밤을 지새우며 불쑥 찾아오는 외로움과 슬픔을 피하지 않고, 그 감정의 한복판으로 들어가 온전히 마주하는 것 또한 스님의 일상적인 수행이다. 현장에서 직접 땀 흘리고 스스로 맑아야만, 파격의 춤에 얄팍한 유흥이 아닌 '진정성'이라는 무게가 실리기 때문이다.
- 춤을 추다 보면, 속세의 화려했던 삶이나 편안함이 문득 그리워질 때도 있을 것 같습니다.
"춤 출 땐 그저 자유로움을 느낄 뿐, 속세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어요. 저는 제 결정을 후회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물론 힘든 적은 많이 있었지요. 속세도 사람 관계 속에서 힘들지만, 여기서도 사람 관계가 좀 힘든 경우가 있거든요. 아직 제 수행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에게 한마디…"그냥 하세요"
자재암에는 가끔 삶의 벼랑 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온다고 한다. 그럴 때 스님은 거청한 법문을 읊조리지 않는다. 그저 따뜻한 차를 건네고, 그들이 두 시간이든 세 시간이든 열 시간이든, 가슴 속 응어리를 토해낼 때까지 묵묵히 경청할 뿐이다.
- 삶을 마감하려고 결심한 분들의 이야기를 '경청' 해주면, 그분들의 마음이 바뀌나요?
"믿기지 않겠지만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그분들이 힘든 이유는 열심히 살지 않아서가 아닐,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소통할 사람이 없어서인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우리는 사실 들으면서도 사실 속으로는 이미 다음 말을 준비하고 있잖아요. 반박하려 하고, 판단하려 하고, 조언하려 하고…. 그건 진정한 경청이 아니죠."
- 특별한 법문보다 그저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준 것이 그분들을 살린 거네요.
"경청과 소통과 교감이 곧 수행입니다."
'덕산지디'란 별칭을 좋아하지만, 스님은 누군가에게 그럴 듯 하게 포장되는 걸 거부한다. 그저 "상식이 통하는 종교, 성실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마음 다쳤을 때 언제든 찾아와 기댈 수 있는 편안한 쉼터를 만들고 싶다"는 소박한 뚝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무기력증에 빠진 이 시대 청년들에게 살아있는 역동성을 전하고 싶을 뿐이다.
"가장 안타까운 게 도전하지 않는 청년들의 모습입니다. 물론 저도 과거에 그랬지만, 제가 겪었던 아픔을 청년들은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도전 속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을 볼 수 있고, 자신감도 생기고, 세상과 소통도 할 수 있거든요. 저는 원래 엄청난 몸치에 소심한 사람이었지만, 결국 춤에 도전했고, 제 안에 있던 트라우마를 깼습니다. 무엇이든 좋으니 그냥 하세요. 아무 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덕산스님은 자신을 대단한 혁신가나 영웅으로 포장하기를 거부한다. 그저 "상식이 통하는 종교, 성실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마음 다쳤을 때 언제든 찾아와 기댈 수 있는 편안한 쉼터를 만들고 싶다"는 소박한 뚝심을 이야기할 뿐이다.
가장 트렌디한 언어로 대중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무너진 정신 건강의 생태계를 복원하려는 한 승려의 '이유 있는 반란'. 그의 깊은 고뇌와 춤사위는, 지금 우리 사회에 '진짜 소통과 상생의 가치'가 무엇인지 묵직하고 깊이 있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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