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와이오밍주 케머러, SMR 공사 현장을 가다
지난달 28일 미국의 수도(首都)인 워싱턴D.C.에서 유타주의 주도(州都)인 솔트레이크시티로 넘어가, 솔트레이크시티 공항에서 차로 두 시간 넘게 이동해 도착한 와이오밍주의 케머러. 인구가 3000명도 채 되지 않는 작은 도시 외곽에 위치해, 주민들 거주지와는 대략 30분 가량 떨어진 인적 드문 곳입니다.
한라산(1950m) 보다 높은 해발 2200m의 황량한 고지대를 달리고 또 달려 이윽고 현장에 도착하니, 서울 여의도 공원 면적(약 23만㎡) 보다도 넓은 약 24만㎡의 부지에서 미국 최초로 건설 허가를 받은 '테라파워(TerraPower)' 4세대 소형모듈원전(Small Modular Reactor) '케머러 1호기(Kemmerer Unit 1)' 조립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테라파워는 이곳에 소듐냉각고속로(SFR)에 기반한 첫 SMR 케머러 1호기 상업 운전을 5년 뒤 시작한다는 목표로 공정을 진행 중입니다.
조립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반제품을 운반해 ‘끼워 맞춘 뒤, 세워 올리는’ 공정으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공사 기일도 기존(대략 4년)의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게 SK측 설명입니다.
◆ '테라파워 원전 건설 승인' 빌게이츠-최태원 합작품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지난 2008년 설립한 테라파워는 차세대 원자로의 한 유형인 소듐냉각고속로(SFR) 설계 기술을 보유한 SMR의 선두 기업으로, SK㈜와 SK이노베이션이 2대 주주(지난 2022년 약 3750억 원 투자)입니다. ‘케머러 1호기’는 빌 게이츠와 SK 최태원 회장의 맞잡은 손이 빚어낸 작품이란 평가가 나옵니다.
지난 3월 미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테라파워의 상업용 첨단 원전 건설을 승인했는데, NRC의 신규 상업용 원전 건설 허가는 10년 만이고 SMR과 같은 첨단 원전 건설 승인은 미국 내 최초입니다.
현장에서 만난 크리스 르베크 테라파워 최고경영자(CEO는 TV조선에 건설 현장에 설치된 원자로 조립 시설을 가리키며, "한국의 파트너들이 제작한 원자로 부품들이 이 건물 안에서 조립돼 그대로 설치된다"며 향후 이어질 추가 건설에서 한국 기업과의 협력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투자와 건설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을 소개하며, 지난해 11월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합의로 발표한 한미 공동설명자료(조인트 팩트시트) 상 대미투자사업에 SMR이 포함되길 기대한다는 꿈도 내비쳤습니다.
◆ SMR 장점 '안전성, 경제성, 다목적성, 유연성'
크리스 르베크 CEO는 SMR의 장점에 대해 안전성, 경제성, 다목적성, 유연성 등 크게 네 가지를 꼽았습니다.
우선 물(경수)이 냉각재인 기존 경수로형 원전과 달리, 이곳에 건설될 SMR은 액체 나트륨을 냉각재로 쓰는 소듐냉각고속로(SFR) 방식이라 기존 경수로형 원전보다 위험이 상대적으로 작다고 설명했습니다.
인근에 지어진 시뮬레이터 시설에선 SMR의 실제 운전 및 비상 시나리오 상황을 가정한 안전성 확인 등이 이뤄지고 있었는데, 기존의 원전 사고 확률이 100만분의 1이라면 SMR의 경우 10억분의 1이라고 전했습니다. 크리스 르베크 CEO는 "현재 원자로도 충분히 안전하지만 확률로 보면 약 1000배 더 안전하다"고 강조했고, 케메러 1호기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패트릭 영 총괄 부사장도 "원자로 자체가 지하에 설치돼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확산될 가능성이 훨씬 더 낮고, 부지 자체도 훨씬 작은 면적으로 (건설이) 가능하다"고 부연했습니다.
건설 비용은 대략 1조 원 규모로 여타 대형 원전(8~10조 원) 대비 10% 수준으로 줄였고, 공기도 24개월 가량 단축돼 공사비도 크게 줄였다고 합니다.
반면 물 대신 섭씨 880도 고온에서도 끓지 않는 액체 나트륨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만큼, 고압을 유지해야 하는 기존 경수로보다 안전성과 활용도를 대폭 높였다는 게 회사 측 설명입니다. 또 전원이 끊겨도 자연 냉각이 가능하고, 전력 수요에 맞춰 출력을 조정할 수 있어 AI 데이터센터 시대에 맞는 유연성을 갖춘 전원이라고 자부했습니다.
◆ "와이오밍 발판, 전 세계로 뻗어갈 것"
인공지능(AI) 산업의 폭발적 성장과 맞물린 전력 수요의 폭증으로 SMR 시장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크리스 르베크 CEO는 "인공지능(AI) 시대에 한국 역시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할 겁니다. 에너지의 미래를 건설하는 이곳에서, 차세대 원자력 에너지에 관한 모든 것이 시작되는 탄생지이자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힘줘 말했습니다.
와이오밍에서 시작된 '첫 삽'을, 전 세계 시장으로의 확장을 노리는 글로벌 SMR 프로젝트로 확장시킬 방침입니다. SK는 테라파워 SMR의 아시아 시장 독점 활용권을 가진 전략적 투자자로, 이미 지난 4월 베트남과 AI 생태계 조성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데이터센터 구축부터 SMR을 활용한 전력 공급 기반 모델을 조성할 기반도 확보해 놓은 상태입니다.
우선 공사 현장에 건설될 12기의 SMR 중 8기는 AI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을 염두에 두고 메타(Meta)에서 계약했습니다. 르베크 CEO는 "지난해 AI 반도체의 선두주자인 엔비디아가 테라파워에 투자했다"며 "HBM(고대역폭 메모리)을 가진 SK와 GPU(그래픽 처리장치)를 가진 엔비디아의 참여는 AI와 원자력이 결합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자평했습니다. 그러면서 "화석연료 가격은 계속 변동하지만 원자력은 장기적으로 안정적"이라며 "최근 호르무즈 해협 봉쇄 사태는 원자력의 에너지 안보상 장점을 잘 보여준다"고 덧붙였습니다.
◆ SK 이노베이션 "SMR 공기 및 상용화 단축 목표"
SK그룹 내 대표 에너지 기업인 SK이노베이션은 테라파워의 기술을 활용해 한국 첫 4세대(비경수로 기반) SMR 건설을 추진 중입니다. 오는 2035년 상업화를 목표로, 아시아 시장에도 적극 진출할 계획입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테라파워의 기술과 경험을 활용, AI데이터센터와 반도체 등 미래 산업의 전력난 해소는 물론 한국이 글로벌 첨단 에너지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자체 보유한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 소재 및 에너지 분야의 기술 경쟁력, 세계 최고 수준의 테라파워 SMR을 결합, 차세대 에너지 시장의 선두 주자로 도약하겠단 방침입니다.
이를 위해 SK이노베이션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심의 의결한 원자력안전법 개정안에 포함된 사전검토제를 활용해 SMR 건설 기간 및 상용화를 상당 부분 단축시킬 계획입니다. 사전검토제는 개발자가 건설 허가 등 인허가를 신청하기에 앞서 규제기관으로부터 사전 검토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올 11월부터 시행될 예정입니다.
SK 관계자는 공장 견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경부고속도로 건설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한 분들도 계셨지만, 지금 그 길로 안 가시는 분이 없습니다. 40년 전 서울 잠실 롯데월드 지하 주차장 건설 당시 필요 이상으로 넓고 흉물스럽다고들 했지만, 지금 그곳의 주차 공간이 부족해 주말엔 주차난이 상당합니다. 현재는 SMR의 필요성을 모든 국민이 인지하시지는 못하지만, 단언컨대 5~10년 뒤에는 그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국민이 거의 없으실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제가 감히 그 확신까지 100% 동의하지는 못하지만, 10년 뒤 펼쳐질 세상이 벌써부터 궁금해지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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