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전체

[윤정호의 앵커칼럼] 역사 자해

  • 등록: 2026.06.10 오후 21:52

  • 수정: 2026.06.10 오후 22:02

이름에는 뜻이 담깁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쓰는 사람의 세계관도 함께 드러납니다.

"북상! 미국에 맞서 북한을 돕자! 조국을 수호하라!"

'항미원조 (抗美援朝)'. 중국이 6·25에 붙인 이름입니다.

시진핑은 2010년 "평화를 보위하고(保衛和平), 침략에 항거한(反抗侵略) 정의의 전쟁(正義之戰)"이라고 했습니다. 제국주의 미국이 북한을 침략했고, 이에 맞서 중국이 나섰으니 정의로웠다는 겁니다. 하지만 6·25가 스탈린의 승인과 마오쩌둥의 지원을 받아 김일성이 일으킨 남침이란 게 공산권 붕괴 이후 백일하에 밝혀졌습니다. 피해자를 가해자로, 가해자를 피해자로 뒤집었던 억지가 바로잡혔습니다.

그런데 서울 한복판에서 중국 시각을 그대로 반영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전쟁기념관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6·25 교육을 한답시고 '항미원조'를 버젓이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 다양한 시각에서 6·25를 이해하게 하겠다는 취지였다는데, 침략자의 논리를 병렬한 게 말이 됩니까?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강도의 입장도 이해해 보라'"

면서 "잔혹극"이라고 한 게 이해됩니다. 균형이 아니라 왜곡이고, 어린 학생들을 혼란스럽게 한 일입니다. 주최 측은 프로그램을 취소했다고 하나, 이런 일이 단순한 실수가 아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1980년대 좌파 진영에서는 6·25를 '민족해방전쟁' 으로 규정했습니다. 미국만 아니었으면 무장투쟁의 상징이라고 여겼던 김일성이 한반도의 주인이 되고, 제국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그랬다면 우리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치하에서 자력갱생하면서 세상과 담을 쌓고 살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런 생각들이 여전히 남아 논란거리를 불러일으키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조지 오웰은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고 했습니다. 역사에서는 이름 하나도 사소하지 않습니다. 올바른 이름이 바뀌면 역사가 오염되고, 역사가 오염되면, 나라 정신도 썩기 때문입니다.

6·25는 항미원조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집어삼키려 한 남침입니다. 아직도 이를 부정한다면 굳이 이 땅에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역사 왜곡에 민감한 여권이 잘 정리해 줬으면 합니다.

6월 10일 윤정호의 앵커칼럼, '역사 자해' 였습니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