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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전날까지 예산안 다투던 美 여야, 야구장서 '하이파이브'…117년 전통 야구대회

  • 등록: 2026.06.12 오전 06:53

  • 수정: 2026.06.12 오전 07:50

10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열린 의회 야구 경기 후 공화당 의원들(오른쪽)과 민주당 의원들(왼쪽)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0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열린 의회 야구 경기 후 공화당 의원들(오른쪽)과 민주당 의원들(왼쪽)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17년 전통 美 의회 친선 야구대회…수익금 약 55억 원, 전액 기부

10일(현지시간) 오후 3시반. 미국 메이저리그 워싱턴 내셔널즈 야구단의 홈구장인 내셔널즈 파크 ‘기자 출입구’에 미 연방의회 의사당 출입증을 가진 전 세계 기자들이 몰렸습니다. 매년 이맘때쯤 열리는 미 의회 친선 야구대회 취재를 위해서입니다.

지난 1909년에 시작돼 올해로 벌써 117년째를 맞는 이 경기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연례 이벤트'입니다. 자선 모금을 겸하기 때문에 '미국 의회 자선 야구 대회(Congressional Baseball Game)'로도 불립니다.

티켓 판매 수익금을 비롯한 수익금 전액은 워싱턴 지역 소년소녀클럽(Boys and Girls Clubs of Greater Washington), 워싱턴 내셔널스 자선재단(Washington Nationals Philanthropies), 미 의사당 경찰 추모기금(United States Capitol Police Memorial Fund) 등 여러 자선단체에 기부됩니다.

경찰 추모기금이 포함된 이유는 지난 2017년 스티브 스컬리스(Steve Scalise·루이지애나)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가 경기 전 연습 도중 총격을 당했을 당시, 의원들을 보호한 경찰관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그 대회 이후 수혜 대상에 추가된 것이죠.

단순한 친선 경기 정도로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대회 규모로 볼 때 속된 말로 장난이 아닙니다. 지난해 이 대회는 역대 최고 금액인 275만 달러 이상(약 42억 원)을 모금했는데, 올해는 총 수익이 그 보다 대략 100만 달러 가까이 늘어난 우리 돈 56억 원에 육박하는 액수(370만 달러)라고 주최 측은 추산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구장을 사용하는 워싱턴 내셔널즈 평균 관중 수가 2만2000여 명인데, 2026 미 의회 야구대회 티켓은 3만2000장 넘게 팔렸습니다. 야구장 내 모든 상점이 문을 열렸고, 주변 '펍(Pub)'들도 워싱턴 내셔널즈 경기가 열릴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운영됐습니다. 몰리는 인파를 감안했을 때, 그렇게 운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죠.

경기 시작은 오후 7시인데, 안타깝게도 4시 경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빗줄기로 봤을 때 혹시 취소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됐습니다. 경기장 관계자는 "1년에 한 번 하는 거고, 의원들 일정 맞추기도 어렵기 때문에 연기는 안 될 것"이라며 "우천 경기라도 강행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진행요원들은 비가 내리기 무섭게 방수포를 깔아 그라운드를 관리했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한 시간 뒤쯤 비가 그쳤습니다.

◆가족 단위로 속속 입장…자녀들과 캐치볼하며 몸 풀어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가족 단위로 야구장을 찾은 점입니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의원들이 카메라를 든 보좌관과 가방을 든 보좌관을 대동한 채로 차에서 내려 경기장쪽으로 이동했을 텐데 이곳에선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린 딸을 안고 들어오는 의원, 아내의 손을 잡고 들어오는 의원, 일가족이 같은 유니폼을 맞춰 입고 등장한 의원 등 그야말로 가족 친화적인 장면이 시종일관 연출됐습니다. 아버지 사진이 크게 인쇄된 '대형 포토 피켓'을 들고 입장하는 모습도 신선했습니다.

단촐하게 혼자 야구 장비가 든 백팩을 메고 오거나, 아니면 ‘쿨하게’ 손에 글러브를 낀 채 끈으로 묶은 야구화 두 짝만 어깨에 걸고 등장한 의원도 있었습니다.

경기 전 몸을 푸는 것도 이색적이었습니다. 그라운드를 돌면서 땀을 빼거나 줄지어 내외야 파트 별로 펑고를 받는 대신, 주로 자녀들과 함께 캐취볼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물론, 투수와 포수로 호흡을 맞추는 선수들의 경우 외야 뒤쪽 불펜에서 제대로 몸을 풀었습니다. 50대 이상의 의원들이 무거운 포수 장비를 차고 몸을 푸는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는 반성도 됐습니다.

사회인 야구를 즐겼던 야구팬 입장에서 부러웠던 것은, 의원들이 원할 경우 구장 안에 마련된 실내 타격 연습장을 이용할 수 있던 점입니다. 취재진 입장은 제한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경쾌한 타구음을 듣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풀렸을 텐데 말입니다.
 

길 시스네로스 / 민주 하원의원
길 시스네로스 / 민주 하원의원


◆전날까지 으르렁했던 美 여야, 오늘은 그라운드 안에서 '하이파이브'

미 공화당과 민주당은 야구 시합 전날까지 예산안 처리를 두고 격한 대치를 이어갔습니다. 공화당 주도로 우리돈 106조원 7000억 원에 달하는 미 이민단속국(ICE) 3년치 예산안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날선 공방도 주고 받았습니다. 양당의 총력전 속 단 2표 차이(214표 대 212표)로 통과됐으니 현장 분위기 짐작은 어렵지 않으실 겁니다.

그랬던 여야가 날이 밝은 뒤, 비도 그치고 쨍한 그라운드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구장 안으로 들어가 덕아웃으로 입장하는 과정에서 서로 주먹 인사나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우정을 다졌고, 뛰다가 넘어지면 일으켜주기도 하면서 '동지애'도 전했습니다.

경기 중에도 타자 머리 위로 날아드는 볼이 수 차례 있었지만, 그 때마다 즉시 타자와 포수가 주먹 인사 등으로 서로를 토닥여 주기도 했고요.

미 캘리포니아 민주당 하원의원인 길 시스네로스(Gil Cisneros) 의원은 경기 전 인터뷰에서 "의회는 함께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할 때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며 "이 경기는 자선행사이며, 양당이 함께 힘을 모아 지원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경기를 통해 서로를 알아갈 수 있기 때문에, 미래 협력을 위한 우정을 쌓는 데 도움도 된다"며 "그런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이런 전통이 참 좋다"고 덧붙였습니다.

에릭 슈미트 미주리주 공화당 상원의원도 "미 건국 250주년을 기념하는 시기에 동료 의원들과 함께 모여 야구를 즐길 수 있어 행복하다"며 "게다가 오늘 아침 자선 기금 덕분에 장학금을 받게 된 젊은이를 만났는데, 야구 경기에서 모금된 기금으로 여러 사람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은 더더욱 감명 깊다"고 말했습니다.

TV조선과 사전 인터뷰를 해준 에릭 슈미트 의원은 첫 타석부터 2루타를 쳤고, 1루수에서 좌익수로 수비 위치를 바꾼 뒤 외야에서 멋진 슬라이딩 캐치까지 해내 올해 경기 최우수선수(MVP)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슬라이딩 과정에서 생긴 코 부분 타박상은 그야말로 영광의 상처가 됐습니다.
 

에릭 슈미트 / 공화 상원의원
에릭 슈미트 / 공화 상원의원


◆류진 한경협 회장의 플레이볼 선언으로 경기 시작…곳곳에 한국 홍보 부스

그라운드에서 의원들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낯익은 분들과 인사를 나누게 됐습니다.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을 비롯해 삼성과 포스코 고위 관계자 등 워싱턴 지역에서 활동 중인 주요 대기업 간부들은, 류 회장이 올해 대회 플레이볼을 대표로 선언하는 이벤트 참여 차 야구장을 찾았다고 전했습니다.

내셔널즈 파크 3루 내야석 깊은 곳에 한국 기업을 홍보하는 현수막들이 곳곳에 붙어 있었고, 식음료를 파는 통로에도 개별 기업들의 홍보 부스가 마련됐습니다. 한경협 관계자들을 비롯해 삼성, 현대자동차, LG, CJ 관계자들도 구장 곳곳을 열심히 누볐습니다.

대회 플레이볼을 외치는 최고 수준의 행사 참여에 드는 비용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 관계자에게 문의했는데, 정확한 액수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대략 10만 달러(1억5천만 원) 가량 드는 것으로 에둘러 전해 들었습니다.

한국계이자 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인 민주당 데이브 민 의원도 취재진을 반갑게 맞았습니다. 민 의원은 "솔직히 내셔널스 파크에서 직접 야구를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370만 달러를 모금한 엄청난 경기에 참여하게 돼 매우 기쁘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아마 모르실 수도 있는데, 지난해 이 경기에 출전한 최초의 아시아계 의원이었다"며 "앞으로 더 많은 아시아계 의원들이 참여하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는 경기에 지명타자로 나서 2루타를 쳤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의원은 뉴욕 롱아일랜드지역에서 재선에 성공한 민주당 톰 수오지 (Tom Suozzi) 하원의원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친한파 의원으로 꼽히는데, 갑자기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는 이어 "오늘 저녁은 민주당에게 중요한 경기"라며 "게임이 끝난 뒤 사람들이 한국말로 '축하한다'는 말을 하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말로 "축하합니다. TV조선 (취재) 감사합니다"라고 립서비스를 해줬습니다.
 

톰 수오지 / 민주 하원의원
톰 수오지 / 민주 하원의원


◆경기는 11-2 공화당 완승…공화당 최근 6연승

시합은 내내 경기를 주도했던 공화당이 11-2 완승을 거뒀습니다. 투타의 안정감이 더했고, 전체적인 팀워크도 공화당이 앞섰습니다. 경기 시작 전 공화당팀은 감독과 주장을 중심으로 둥글게 둘러서서 다 같이 파이팅을 외친 반면, 민주당은 그런 조직적인 팀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경기 수준은 대략 우리나라 사회인 야구 4부 정도 수준이었습니다. 투수는 대략 시속 100㎞ 정도의 공을 던졌고, 포수나 야수들이 어깨도 대략 4부 수준으로 파악됐습니다. 평범한 유격수쪽 병살타 코스가 송구 실책으로 사실상의 2루타가 돼 버리고, 야수들의 포구 미스도 가끔 보였지만 평균 연령이 50대인 것을 감안하면 그 조차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내야 땅볼을 미스 없이 처리했을 때, 양팀 모두 내야수들이 주먹을 불끈 쥐며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면 '동서고금의 사회인 야구인들은 모두 똑같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다시 깨닫게 한 하루

정치는 국민들을 잘 살피는 것입니다. 정치인들은 국민 모두가 행복할 수 있도록 바르게 인도하는 역할을, 국민을 대표해 하고 있는 것이죠.

요새 대한민국 정치를 보면 거대 양당 모두 극단으로 치우쳐 각 진영을 대변하는 역할에 머물고 있는 듯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중도를 중심으로 분포해 있는 정치 비관여층은 물론이고, 양 극단의 국민 모두가 소중하기 때문에 일방의 주장이 아닌 상대의 말에도 귀를 잘 기울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어서죠. 함께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한 뒤, 경기 후 서로 악수할 여유가 있으신지도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미국의 상하원 의원들은 양당이 싸울 땐 싸우더라도, 서로 힘을 합쳐야 더욱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고 위기시에는 여야가 없다는 것을 말로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로 넘지 말아야 할 '레드 라인'은 분명히 알고 있고, 지행합일마저 되고 있습니다.

10년 전 단기특파원으로 나왔을 당시 유소년 야구팀이 시합 전 단체로 외친 구호(Win with class, lose with honor/기품있게 이기고, 명예롭게 진다)를, 10년 만에 메이저리그 구장에서 다시 듣게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야구장이 부럽고, 이런 야구 경기 자체가 부럽고, 야구장을 찾아 서로를 격려하는 관중들이 부럽다는 말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은 과연 언제쯤이 될까요? 이제 오늘부터 2026 월드컵이 개막하는데, 스포츠를 통해서라도 온 나라가 하나 되는 모습을 보게 되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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