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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이름값 2조 원의 그늘, 공정위는 왜 상표권을 펼쳐 들었나

  • 등록: 2026.06.29 오전 06:00


*계열사가 그룹의 이름을 빌려 쓰는 대가로 지주회사에 돈을 낸다. 지극히 합법적인 이 거래를 공정거래위원회가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번에 시작된 조사가 어디까지 번지고, 합법과 편법의 경계는 어떻게 그어질까.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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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2조 원이 오가는 이름값

기업이 자기 그룹의 이름을 쓰는 데에도 돈이 든다. 'LG' 간판을 단 계열사는 그룹을 대표하는 지주회사에 LG라는 이름을 쓴 값을 치르고 'CJ' 로고를 붙인 회사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상표권, 즉 브랜드 사용료다. 브랜드에 값을 매기는 일이 낯설게 들릴 수 있지만 잘 키운 이름 하나가 매출을 끌어올리는 무형의 자산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그 규모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12월 초 공개한 2025년 공시대상기업집단 내부거래 현황을 보면 대기업집단이 한 해 동안 계약을 맺고 주고받은 상표권 사용료는 2024년 기준 2조 1,500억 원에 달한다. 5년 전인 2020년의 1조 3,500억 원과 비교하면 60% 가까이 불어난 액수다. 사용료를 유상으로 주고받는 집단 수도 2020년 46개에서 2024년 72개로 5년 연속 늘었다. 브랜드를 사고파는 거래가 해마다 몸집을 키우며 어엿한 이름값 시장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돈이 쏠리는 곳은 분명하다. 연간 1,000억 원 넘는 사용료가 발생하는 집단은 LG·SK·한화·CJ·포스코·롯데·GS 등 7곳인데, 이들이 챙긴 금액 합계가 1조 3,400억 원으로 전체 유상거래의 62.4%를 차지한다. 사용료를 받는 113개 회사 가운데 36곳이 지주회사이고 매출 대비 사용료 수취 비중이 10%를 넘는 회사 18곳은 하나도 빠짐없이 지주회사다. 매출의 절반이 넘는 54.8%를 상표권 사용료로 거두는 CJ가 대표적이다. 이름값이 지주회사의 든든한 수익원이 됐다는 뜻이다.

여기까지는 그저 브랜드가 비싸졌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런데 숫자 하나가 분위기를 바꾼다. 총수가 있는 집단에서 사용료를 받는 회사 가운데 총수 일가 지분이 20% 이상인 회사들이 거둬들인 금액이 전체 수취액의 81.8%에 이른다는 대목이다. 이름값으로 오간 돈의 거의 전부가 총수 일가가 많은 지분을 쥔 회사로 흘러 들어간다는 의미다. 공정위가 줄곧 상표권 거래를 예의 주시해 온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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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인데 왜 들여다보나

먼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지주회사가 계열사로부터 상표권 사용 대가를 받는 행위 자체는 합법이다. 정상적인 거래로 인정되는 것이다. 상표권자는 자기 상표를 쓰도록 허락하고 그 대가를 받을 독점적 권리를 가진다. 브랜드에 값을 매기고 그 값을 치르는 일은 원칙적으로 시장경제가 인정하는 정당한 거래다.

그렇다면 공정위는 왜 합법적인 거래에 칼을 대려 할까. 핵심은 가치를 객관적으로 매기기가 너무 어렵다는 상표권의 속성에 있다. 공장 부지나 부품에는 시세가 있다. 하지만 '한화'라는 이름이 정확히 얼마짜리인지는 누구도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값을 매기는 자와 값을 치르는 자가 모두 한 가족·한 그룹이라면 그 가격이 시장에서 형성됐을 제값인지 검증할 길이 마땅치 않다. 바로 이 모호함 때문에 상표권 거래는 총수 일가의 지분이 높은 지주회사로 계열사의 이익을 슬그머니 옮겨 담는 통로로 쓰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이를 사익편취 또는 부당이익 제공, 터널링(tunneling)이라 부른다. 회사라는 큰 그릇에 담겨 주주 모두의 몫이 되어야 할 이익을 마치 땅 밑에 굴을 파듯 총수 일가의 호주머니로 빼돌린다는 비유다. 멀쩡한 계열사가 실제 쓰임보다 비싼 사용료를 지주회사에 꼬박꼬박 내고 그 지주회사의 지분 대부분을 총수 일가가 쥐고 있다면 결과적으로 계열사의 다른 주주와 회사의 이익이 총수 일가에게로 이전되는 구조가 된다. 앞서 본 81.8%라는 숫자가 의심을 키우는 이유다.

배경에는 더 큰 그림이 있다. 지난해 9월 취임한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우리나라 경제의 가장 큰 숙제로 경제력 집중을 꼽아 왔다. 그는 지난 5월에 열린 국제경쟁네트워크(ICN) 회의에서 "자산 5조 원 이상 대기업집단의 매출이 국내총생산(GDP)의 약 79%에 이르고 이들의 내부거래 규모도 GDP의 31%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사익편취나 내부거래를 통한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가 기업 가치와 글로벌 경쟁력을 갉아먹는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문제의식이다. 상표권 사용료는 이 문제의식이 가장 또렷하게 겨누는 표적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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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준으로 조사 대상을 가리나

그렇다면 합법적인 이름값 거래와 위법한 사익편취를 가르는 선은 어디인가. 법이 들이대는 잣대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특수관계가 없는 남남 사이였어도 이 가격에 거래했겠는가, 공정거래법은 이를 정상가격이라고 부른다. 시기·종류·규모·기간 등이 비슷한 상황에서 아무 관계없는 독립된 회사끼리 거래했다면 형성됐을 가격이 정상가격이고 계열사 거래가 이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이뤄졌다면 부당지원의 소지가 생긴다.

여기에는 비교적 구체적인 기준선도 있다. 공정위 심사지침은 실제 거래가격과 정상가격의 차이가 7% 미만이고 한 해 거래 총액이 30억 원 미만이면 원칙적으로 지원행위로 보지 않는다. 거꾸로 말하면 이름값이 제값보다 7%를 훌쩍 넘게 비싸고 규모도 크다면 규제의 시야에 들어온다는 뜻이다.

문제는 상표권에는 비교할 남남 사이의 시세가 거의 없다는 데 있다. 그래서 실제 조사에서는 사용료를 어떻게 계산했는가라는 산정 방식 자체가 쟁점이 된다. 브랜드 사용료는 통상 매출액에서 광고선전비 등 일부 항목을 뺀 금액에 일정 요율을 곱해 정한다. 공정위는 이때 내부거래로 부풀려진 매출까지 기준에 넣지는 않았는지, 업종 특성과 실제 브랜드 이익을 제대로 반영했는지, 요율을 합리적 근거 없이 높게 책정하지는 않았는지를 따진다.

실제 공정위가 함께 공개한 집단별 자료를 보면 이 요율의 편차가 한눈에 드러난다. SK·LG·롯데·포스코·GS 등 상당수 대형 집단은 매출액에서 광고선전비를 뺀 금액에 0.2% 안팎을 적용한다. 그런데 한화는 0.3%, CJ는 0.4%로, 비슷한 처지의 다른 거대 집단보다 1.5배에서 2배 높은 요율을 매긴다. 요율이 높다는 것이 곧 위법은 아니다. 브랜드 가치나 업종이 다르면 요율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왜 우리만 남들의 2배인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이 격차는 정상가격에서 벗어났다는 의심의 출발점이 된다.

특히 업종별 특성은 까다로운 변수다. 제조업의 매출과 금융업의 매출은 성격이 다르다. 보험사의 경우 보험료 수입과 투자영업수익까지 매출에 잡히는데 여기에 제조업과 똑같은 요율을 적용하면 사용료가 과도하게 부풀려질 수 있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다만 이 선 긋기가 칼로 무 자르듯 명쾌하지는 않다. 그동안 법원은 공인된 방법으로 산정한 요율을 적용했다면 이를 적법한 거래로 인정해 왔다. 사용료가 비싸 보인다는 인상만으로는 위법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산정 근거가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면 방어가 가능하다. 합법과 위법 사이에 넓은 회색지대가 존재하고 바로 그 회색지대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이번 조사의 승부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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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에서 끝날까

공정위는 최근 한화를 비롯해 한화솔루션·한화생명·한화손해보험 등 주요 계열사를 상대로 약 일주일에 걸친 현장조사를 벌였다. 계열사들이 그동안 한화에 지급해 온 브랜드 사용료가 합리적 기준에 따라 산정됐는지, 거래를 심의하는 절차는 적정했는지가 조사의 초점이다.

왜 하필 한화가 첫 표적이 됐을까. 공정위가 공개한 내부거래 통계에 그 단서가 흩어져 있다. 한화는 최근 10년간 내부거래 비중이 4.6%포인트(p) 늘어 증가폭 2위 집단에 올랐고 내부거래 금액이 상위 3개 계열사에 가장 많이 쏠린 집단으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혔다. 1,000억 원 이상 상표권 사용료가 발생하는 7개 집단에도 포함된다. 유가증권 내부거래 13조 6,000억 원과 계열사 간 담보 제공 2조 2,000억 원 규모 역시 전체 상위권이다. 내부에서 돈과 자산이 활발히 오간 흔적이 통계 곳곳에 남아 있는 셈이다.

공정위가 함께 공개한 세부 자료는 더 구체적이다. 숫자로 또렷하다. 2024년 한화가 거둔 상표권 사용료는 약 1,796억 원으로, 같은 해 이 회사 당기순이익 약 1,974억 원의 91%에 이른다. 이름값이 지주회사 한 해 순익의 거의 전부를 책임지는 셈이고 그 지주회사 지분의 27.7%를 총수 일가가 쥐고 있다.

무엇보다 한화는 시험대로 삼기에 적합한 구석이 있다. 한화생명·한화손해보험 같은 금융계열사가 끼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과거 브랜드 사용료 명목으로 수백억 원을 지주회사에 내다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경영유의 조치를 받은 전력이 있다. 금융사 매출에 제조업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둘러싼 해묵은 논란을 공정위가 정면으로 짚어 볼 수 있는 사안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핵심은 이번 조사가 한화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지주회사나 핵심 계열사에 브랜드 사용료를 내는 구조는 대기업집단 상당수가 공유한다. 공정위가 한화 조사에서 산정 방식이나 거래 절차의 허점을 발견한다면 똑같은 잣대를 다른 집단에도 들이댈 명분이 생긴다. 한화와 나란히 연간 1,000억 원 이상 사용료가 오가는 LG·SK·CJ·포스코·롯데·GS가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화는 시작점일 뿐 이번 조사는 대기업집단 전반의 이름값 징수 관행을 겨눈 신호탄에 가깝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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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지침으로 보면 누가 남나

부당지원행위 심사지침은 어떤 내부거래가 규제망에 걸리는지를 가늠하는 일종의 거름망이다. 그물코마다 잣대가 다르다. 이 거름망에 공정위가 공개한 공시집단 통계를 부어 거르면 한화 다음으로 시선이 쏠릴 만한 후보군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난다. 다만 못 박아 둘 것이 있다. 아래에서 거론하는 집단들은 위험 요인에 부합하는 정황을 가졌을 뿐 위법이 확인됐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공개된 숫자가 드리운 그림자일 뿐이며 실제 조사 착수와 그 결과는 전적으로 별개의 문제다.

먼저 정상가격에서 얼마나 벗어나 보이는가를 볼 수 있다. 매출에 견줘 사용료 비중이 유난히 높은 회사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매출의 절반이 넘는 54.8%를 상표권 사용료로 거두는 CJ가 그렇다. 비중이 높다는 사실 자체가 위법은 아니다. 사업 대부분을 자회사 관리와 브랜드 보유에 두는 순수지주회사일수록 이 비중은 구조적으로 높아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값이 과연 제값인가를 따져 묻기에 가장 도드라진 출발점인 것만은 분명하다.

다음은 규모다. 심사지침은 설령 단가가 정상가격이라 해도 과도한 물량으로 거래해 막대한 이익을 몰아주면 지원행위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 잣대 앞에서는 한화와 더불어 연간 1,000억 원 넘는 사용료가 오가는 LG·SK·롯데·GS가 자연스레 거론된다. 4곳 모두 LG·SK·롯데지주·GS라는 지주회사를 정점에 세운 체제이고 사용료의 절대 액수가 크다.

가장 결정적인 지점은 그 돈이 결국 누구에게 돌아가는가다. 사익편취 규제는 총수가 있는 집단에만 적용된다. 그래서 똑같이 거액의 이름값을 받더라도 구조가 갈린다. 1,000억 원 이상 7개 집단 가운데 포스코는 지배하는 총수 일가가 없는 동일인이 법인인 이른바 오너가 없는 집단이다. 사용료가 특정 가문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으니 사익편취 차원의 위험은 구조적으로 약하다.

반대로 LG·SK·CJ·GS는 총수 일가, 지주회사, 거액 사용료라는 3박자를 모두 갖춰 한화 조사의 논리가 가장 그대로 옮겨붙을 수 있는 자리에 서 있다. 특히 사용료를 받는 지주회사의 총수 일가 지분은 GS 45.3%, CJ 44.9%로 거대 집단 가운데 가장 높다. 흥미로운 예외는 롯데다. 롯데도 약 1,277억 원을 거두지만 정작 그 돈을 받는 롯데지주의 총수 일가 지분은 15.2%로 사익편취 규제의 문턱인 20%를 밑돈다. 같은 거액이라도 롯데는 사익편취라는 잣대에선 한 발 비켜서 있고 계열사 간 부당지원이라는 별도 잣대로만 걸리는 셈이다. 이름값으로 오간 돈의 81.8%가 총수 일가 지분이 높은 회사로 귀속됐다는 숫자, 그리고 한화·LG처럼 그 사용료가 지주회사 순이익의 70~90%를 차지하는 사례들이 바로 이 구조를 겨눈 화살표인 셈이다.

다음은 업종이다. 한화 조사의 핵심 쟁점은 보험계열사의 매출을 제조업과 같은 잣대로 재서 사용료를 매긴 것이 타당하냐는 데 있다. 이 불씨는 생명보험·손해보험·증권 같은 금융계열사를 거느린 다른 그룹으로 옮겨붙기 쉽다. 과거 한 그룹의 사례를 보면 금융사에는 0.1%, 비금융사에는 0.23%처럼 업종별로 요율을 달리 적용해 왔는데 이 구분과 요율이 합리적이었는지가 도마에 오를 수 있다. 금융 자산이 많은 집단일수록 사용료 산정의 매출 정의를 둘러싼 공방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여기에 직거래가 더 싼데도 계열사를 거치게 해서 통행세를 챙기거나 자금 대여, 담보 제공, 계열사 주식·채권(유가증권) 거래 등에서도 단서가 나올 수도 있다.

정리하면 한화는 이름값이라는 한 갈래에서 터진 첫 단추일 뿐이다. 정상가격 일탈이 의심되는 곳, 거래 규모가 큰 곳, 총수 일가 귀속 구조가 뚜렷한 곳, 금융계열사 매출 논란을 안은 곳 등 하나씩 짚어 갈수록 감시망에 들 만한 이름은 늘어난다. 진짜 시험대는 공정위가 이 가운데 어디서 제값과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입증해 내느냐다.

2026 국제경쟁네트워크(ICN)에 참석한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 / 필리핀 경쟁위원회 유튜브 캡처
2026 국제경쟁네트워크(ICN)에 참석한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 / 필리핀 경쟁위원회 유튜브 캡처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방향을 가늠하려면 두 개의 상반된 힘을 함께 봐야 한다. 한쪽에는 세지는 규제의 흐름이 있다. 주병기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부당 내부거래와 계열사 누락 행위를 집중 감시하고 부당이득에 비례해 과징금을 매길 수 있도록 경제적 제재를 현실화하겠다고 못 박았다. 과징금 부과율과 상한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조사에 불응하면 과징금을 물리는 방안까지 검토하겠다고 했다. 공정위는 또 올 하반기에 대기업집단의 소유·출자구조와 내부거래, 지배구조 실태를 한꺼번에 분석해 공개하고 그룹의 건전성을 한눈에 보여 주는 기업집단 건전성 평가 지표를 개발하겠다고 예고했다. 시장에 정보를 쏟아부어 압력을 만들고 기업 스스로 관행을 고치도록 유도하겠다는 전략이다.

다른 한쪽에는 입증의 벽이 있다. 공정위에게 상표권·내부거래 사건은 결코 손쉬운 싸움이 아니었다. 2015년 한화의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조사했을 때 결국 무혐의로 마무리했고 비슷한 시기 SK C&C 사건은 법원에서 최종 패소했다. 앞서 본 대로 상표권 사용료를 둘러싼 판결에서도 법원은 공인된 방법으로 산정했다면 적법하다는 쪽에 무게를 실어왔다. 비싸 보인다와 위법하다 사이의 간극을 법정에서 메우는 일은 생각보다 험난하다.

이 두 힘이 맞물리면서 공정위의 현실적 무기는 강제 제재보다 시장 압력을 통한 자발적 개선 유도 쪽에 무게가 실릴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공정위는 이번 발표에서 부당 내부거래 여부를 자세히 감시하는 동시에 주요 내부거래 현황을 상세히 공개해 시장의 자율적 감시·평가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조사로 위법을 적발해 처벌하는 길과 통계를 공개해 기업이 스스로 사용료 관행을 손보게 만드는 길을 함께 가겠다는 것이다.

당장의 분수령은 한화 조사 결과다. 공정위가 산정 방식이나 절차에서 구체적 문제를 잡아낸다면 조사는 다른 집단으로 빠르게 번질 것이고 반대로 뚜렷한 혐의를 입증하지 못한다면 회색지대의 벽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데 그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기업들이 그동안 관행으로 여겨 온 이름값 거래의 산정 근거를 다시 들여다보고 정비하는 계기가 되리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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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경계를 긋는 문제

상표권 사용료를 둘러싼 이번 일은 브랜드에 값을 매기는 것이 옳으냐를 묻는 싸움이 아니다. 잘 키운 이름은 분명한 자산이고 그 대가를 받는 것은 정당하다.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어디까지가 이름값의 정당한 대가이고 어디부터가 회사의 부를 총수 일가로 옮기는 편법인가. 그 경계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그을 것인가가 이 사안의 본질이다.

값을 매기기 어려운 무형의 자산일수록 경계는 흐릿하고 흐릿한 경계는 늘 악용의 여지를 남긴다. 한화에서 시작된 공정위의 현장조사는 그 흐릿한 선을 조금이라도 또렷하게 그어 보려는 시도다. 그 선이 어디에 그어지느냐에 따라 한 해 2조 원이 오가는 이름값 시장의 풍경은 적지 않게 달라질 것이다. 시장과 경쟁당국, 그리고 기업 모두에게 남겨진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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