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탈모 치료 시장이 커지면서 건강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던 탈모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커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탈모 치료약의 건강보험 적용 검토를 주문한 데 이어 정부가 청년층부터 우선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자 관련 찬반 논쟁에 불이 붙었다.
현재 건강보험은 원형탈모 등 질환에 따른 일부 병적 탈모 치료에는 적용되지만 유전이나 노화에 따른 탈모 치료는 비급여 대상이다.
그러나 건강보험 재정을 탈모 치료에 투입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 중증질환 환자단체와 정치권 등을 중심으로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Q. 대통령까지 "심는다"…탈모치료, 미용인가 생존인가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탈모 치료 문제를 언급하며 건강보험 적용 확대 검토를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예전에는 탈모를 미용의 문제로 봤지만 요즘은 생존의 문제로 보는 것 같다"며 "탈모도 병의 일부 아니냐"고 말했다.
현재 건강보험은 원형탈모 등 질환으로 발생하는 일부 병적 탈모에 한해 적용된다.
유전이나 노화로 발생하는 탈모 치료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영역이다.
이 대통령은 "젊은 사람들이 보험료만 내고 혜택을 못 받아 억울한 경우도 있는 것 같다"는 취지로 청년층의 건강보험 체감 혜택 문제를 언급했다.
사실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은 이 대통령의 오랜 관심 정책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지난 2022년 대통령 선거 당시에는 '이재명은 뽑는 게 아니라 심는 겁니다'라는 문구가 화제를 모았다.
당시 이 대통령은 탈모로 인한 불안과 대인기피, 관계 단절 등이 삶의 질과 직결될 수 있다며 탈모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 확대를 공약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Q. 국내 탈모환자 몇명? 여성도? 40대가 대다수?
탈모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는 매년 24만명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성별로는 남성 환자가 13만4155명, 여성 환자가 10만2854명이었다.
여성 환자의 비중도 43.4%에 달해 탈모 문제가 특정 성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연령별로 보면 40대 환자가 5만3489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30대 5만712명, 50대 4만6539명, 20대 3만5803명 순이었다.
취업과 직장생활, 결혼 등 사회, 경제 활동이 집중되는 20~40대 환자가 전체 탈모 진료 인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질환별로 살펴보면 원형탈모증 환자가 17만5493명으로 가장 많았다.
기타 비흉터성 모발 손실 환자가 2만9583명, 안드로젠 탈모증 2만3941명, 흉터성 탈모증 1만1779명으로 뒤를 이었다.
Q. 탈모치료 시장 규모는? 약값? 진료비는?
탈모 환자들이 늘어나면서 관련 치료제 시장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추세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받은 '탈모 치료 관련 의약품 공급 현황' 등에 따르면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탈모 치료제 공급액은 2022년 2164억2582만원에서 2025년 2568억3331만원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탈모 치료제 공급량도 2억9573만6309개에서 4억4632만1335개로 약 50.9% 늘었다.
올해 들어서도 증가세는 계속되고 있다.
2026년 1월부터 4월까지 탈모 치료제 공급액은 864억5930만원, 공급량은 1억5727만1177개로 집계됐다.
환자들이 병원에 지불하는 진료비 역시 늘고 있다.
탈모증 총진료비는 2022년 366억9794만원에서 2025년 392억7527만원으로 증가했다.
이 금액은 약국 처방이나 직접 조제 비용을 제외하고, 병원에서 발생한 진찰료와 검사비 등을 합산한 것이다.
2025년을 기준으로 탈모 치료제 공급액과 병원 진료비를 단순 합산하면 국내 탈모 치료와 관련해 지출되는 비용은 연간 2900억원을 웃돈다.
Q. "탈모의 설움을 아느냐" vs "암같은 중증질환 치료가 우선"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에 찬성하는 측은 탈모를 단순한 미용 문제가 아닌 삶의 질과 정신건강에 영향을 주는 질환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탈모가 심한 경우 우울감이나 대인기피, 자신감 저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취업과 연애, 결혼 등을 앞둔 청년층에게는 사회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도 말한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청년이나 취약계층이 치료비 부담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만큼 최소한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반대 측은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암과 희귀질환, 심뇌혈관질환 등 생명과 직결되는 중증질환 치료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탈모 치료까지 건강보험 보장 범위를 확대하면 결국 건강보험 재정 악화와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생명과 직결된 중증질환 치료제보다 탈모에 재정을 우선 투입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처사"라는 취지로 비판했다.
갑론을박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탈모 병원을 운영한다고 밝힌 한 의사는 자신의 SNS에 "탈모약 급여화를 극렬하게 반대한다"며 해당 재원을 희귀질환 환자 지원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탈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당사자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거나, 무제한 지원은 어렵더라도 일정 범위에서 치료비 부담을 낮춰줄 필요가 있다는 반론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Q. 건강보험 적용하면 없던 탈모 환자도 생긴다?
탈모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가장 큰 쟁점 가운데 하나로 재정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탈모 치료제에 건강보험을 적용할 경우 본인부담률 등의 조건에 따라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연간 최대 1600억원에 이를 수 있다고 추산하기도 했다.
정재훈 고려대 의대 교수는 별도 분석에서 남성형 탈모 치료제에 건강보험을 적용할 경우 건강보험공단 부담이 연간 1000억~1400억원 수준에서 많게는 5000억~7000억원까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처럼 추계 금액의 차이가 큰 이유는 건강보험 적용 대상과 잠재적 치료 인구, 본인부담률 등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예상 비용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현재 병원을 찾는 탈모 환자만을 기준으로 계산할지, 건강보험 적용 이후 새롭게 치료를 시작할 잠재적 환자까지 포함할지에 따라서도 필요한 재정 규모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무엇보다 급여화 이후 치료 수요가 급증하는 이른바 '수요 유발 효과' 역시 재정 추계의 주요 변수로 꼽힌다.
또 탈모 치료제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더라도 환자의 본인부담률을 어느 정도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건강보험 재정 부담은 달라지게 된다.
2025년 전문의약품 공급액을 기준으로 단순 계산할 경우, 환자가 약값의 30%를 부담하고 건강보험이 나머지 70%를 부담하면 건보 재정에서는 약 1797억원이 필요하다.
환자 본인부담률을 50%로 높이면, 건강보험 부담액은 약 1284억원 수준으로 줄어든다.
실제 건강보험 적용 이후 치료를 시작하는 환자가 늘어나거나 처방량이 증가하면 재정 부담은 이보다 커질 수 있다.
Q. "탈모도 다같은 탈모 아냐"…청년? 저소득층? 누굴 먼저 치료?
정부는 탈모 치료제의 전면적인 건강보험 적용 외에도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왔다.
대표적인 방안은 사회활동이 활발하지만 경제적 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청년층을 우선 지원하는 방식이다.
일정한 소득 기준을 적용해 저소득층이나 취약계층에만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우선 특정 연령대나 지역, 대상자를 선정해서 일정 기간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실제 재정 영향과 치료 효과, 국민 만족도 등을 분석해서 확대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도 대안으로 나오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취업을 앞둔 청년층이 탈모 문제를 상대적으로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점 등을 고려해 청년층을 대상으로 건강보험을 우선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정부가 검토한 방안대로 20~34세 등 특정 청년 연령층에 우선 적용한다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전면 급여화보다는 재정 부담을 낮출 수 있다.
다만 연령을 기준으로 건강보험 혜택에 차이를 두는 것이 형평성에 맞느냐는 또 다른 논쟁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Q. 정치권도 '친탈 vs 반탈'…모(毛)퓰리즘 논쟁?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 문제는 정치권에서도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올해 하반기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정 장관은 탈모가 청년들에게는 심각한 문제라는 의견이 있다며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약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급여화에 긍정적인 답변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야권에서는 일제히 반발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건강보험은 큰 병으로 인해 한 가정의 생계가 무너지는 것을 막고 생명과 직결된 질환을 함께 책임지기 위한 사회적 약속"이라는 취지로 비판했다.
최보윤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건강보험은 생명과 직결되는 질환과 의학적으로 필수적인 치료를 우선 보장하기 위한 제도라며 "모퓰리즘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건강보험 재정이 "정치인이 생색내며 나눠주는 하사품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암 환자와 희귀질환자 등 생명과 직결된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있는 상황에서 탈모 치료를 우선 지원하는 것이 적절한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청년들이 탈모로 인해 취업과 연애, 결혼 등 사회생활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탈모 치료제 급여화를 둘러싼 논쟁이 커지면서 정치권에서는 머리카락을 뜻하는 '모(毛)'와 포퓰리즘을 합친 '모퓰리즘'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Q. 탈모 정책 어디로 가고 있나?
행정안전부와 보건복지부는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급여 적용 확대'를 주제로 국민참여단 200명이 참여하는 '모두의 토론회'를 4일 개최할 예정이었다.
국민참여단이 학습자료와 전문가 발표 등을 바탕으로 토론하고 대안을 마련하면, 이를 향후 보건복지부의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이나 관련 고시 개정 등 제도 개선 과정에 활용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둘러싼 비판 여론이 확산하자 정부는 토론회 개최를 취소했다.
보건복지부는 "토론회를 앞두고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탈모 급여 확대에 대한 여러 입장이 충분히 제기된 점을 감안해 시간을 두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취소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모두의 토론회'는 중단하더라도 청년을 비롯한 국민들의 건강 문제를 해결하고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 발굴은 계속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정부가 공론화 절차까지 중단하면서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 논의는 당분간 속도 조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무엇보다 건강보험 적용을 위해서는 의학적 필요성과 재정 영향, 급여 우선순위 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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