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경채는 원래 한 박스에 4000~5000원이면 사는데 지금은 1만7000원입니다. 고수도 3000원 하던 게 1만2000원까지 뛰었어요. 그래도 음식값은 못 올리죠."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40도까지 치솟은 7일 오후 용산구 원효로의 한 식당가. 평소 점심시간이면 직장인들로 북적이는 골목이지만 이날은 뜨거운 열기를 피해 발길을 돌린 사람들이 많았다. 골목 안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에어컨은 쉼 없이 돌아갔지만 빈 테이블만 눈에 들어왔다.
이 식당을 운영하는 나모(48)씨는 TV조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손님은 더위 때문에 줄었는데 식재료값은 계속 오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원래 여름에는 채소값이 가장 쌀 시기인데 올해는 정반대"라며 "청경채는 1만5000~1만7000원, 공심채는 7000~8000원 하던 게 1만2000원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이어 "부추도 원래 1000원 안팎이면 샀는데 오늘은 2800원이었고, 대파도 한동안 2800원까지 뛰었다"며 "양파도 계속 비싸다"고 했다.
향신료 가격도 급등했다. 그는 "고수는 예전엔 3000~4000원이면 들어왔는데 지금은 1만2000원"이라며 "베트남 음식은 채소를 많이 쓰는데 원가 부담이 너무 커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메뉴 가격은 올리지 못하고 있다.
"안 그래도 폭염 때문에 손님이 안 오는데 음식값까지 올리면 누가 오겠습니까. 그냥 울며 겨자 먹기로 버티는 거죠. 한철 지나면 좀 나아질 거라고 믿고 견디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 베트남 쌀국수 식당에서 100m 떨어져 있는 인근 H식자재마트로 가 보았다. 물품 관리와 경리를 맡고 있는 김모(49)씨는 "요즘 가장 많이 오른 품목 중 하나가 계란"이라고 TV조선 기자에게 말했다.
그는 "여름 오기 전에는 계란 한 판이 7000~8000원이었는데 지금은 9200원 정도 한다"며 "닭들이 더위 때문에 산란을 제대로 못 한다는 얘기가 많다"고 말했다.
계란값 상승은 연쇄적으로 다른 식재료 가격도 밀어 올리고 있다.
김씨는 "계란이 비싸지니까 마요네즈나 드레싱, 반죽 재료까지 같이 오른다"며 "식당 사장님들이 '예전엔 매주 왔는데 요즘은 장사가 안 돼 2~3주에 한 번 온다'고 하소연한다"고 말했다.
기록적인 폭염이 농산물 가격을 끌어올리는 이른바 '히트플레이션(Heat+Inflation)' 현상이 현실화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오이 10개의 평균 소매가격은 1만3824원으로 6월 말보다 87.8% 올랐다. 같은 기간 시금치 가격은 95.4%, 열무는 67.6% 상승했다. 깻잎과 배추 가격도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채소류 가격 상승은 기록적 폭염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신선 식품은 폭염으로 생산량이 감소하면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른다. 한국은행은 앞서 연구를 통해 기온이 일시적으로 1도 상승하면 농산물 가격 상승률은 0.4~0.5%포인트,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07%포인트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했다.
폭염이 장기화할 경우 '히트플레이션'이 일시적인 채소값 급등을 넘어 전반적인 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4일 공개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록에서 한 금통위원은 "유럽 등에서 폭염 피해가 발생하면서 국제투자은행 등을 중심으로 '기후 인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며 "이상기후가 현실화하면 글로벌 식료품 수급에도 차질이 생겨 국내 물가를 추가로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농·축·수산물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한 대응에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산란계와 젖소 농가를 점검하며 열차단 도포제와 고온 스트레스 완화제 등을 지원하기로 했고, 해양수산부도 고수온 대응 비상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이날 수온 28도 이상이 3일 이상 이어지는 '고수온 경보' 발효 해역을 기존 6곳에서 17곳으로 확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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