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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호 앵커칼럼] 417호 법정의 애증

등록 2017.05.23 20:27

수정 2017.05.23 22:02

여기가 어딜까요? 그 유명한 417호 대법정입니다. 이 사진은 21년 전입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던 전두환-노태우, 두 사람에 대한 군사 반란사건 첫 재판 모습입니다.

그런데 사진에 뒷머리만 나왔습니다. 재판부가 여기까지만 찍으라고 한 겁니다. 사진엔 안 보입니다만 피고인석에서 노 전 대통령이 전 전 대통령 손을 살짝 잡았습니다. 전 전 대통령은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눈인사를 합니다. 그러곤 서로 외면합니다.

검사가 노 전 대통령에게 물었습니다. "두 사람은 육사 동기생으로 생도 때부터 가장 막역한 친구였습니까." 대답은 "그렇다"였습니다. 하지만 5공 청산으로 틀어진 친구 사이엔 찬 기운만 감돌았습니다. 그래도 한 법정에 서자 동지애가 살아났던 모양입니다. 재판이 끝난 뒤 비로소 마주보고 악수를 나눕니다. 다섯 달 뒤엔 선고를 기다리며 전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 손을 잡았습니다.

오늘 그 역사의 현장에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함께 섰습니다. 최씨는 40년 전부터 청와대를 드나들며 영애 시절 박 전 대통령의 말벗이 됐습니다. 함께 자기도 하며 심부름을 도맡았습니다. 최씨는 검찰 조사에서 "박 전 대통령이 개인사의 아픔과 배신의 상처, 외로움 탓에 내게 많이 의지했다"고 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도 대국민 사과에서 말했습니다.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최씨가) 곁을 지켜줬기에 경계의 담장을 낮췄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재판정에서 두 사람 심경은 달라 보였습니다. 최씨는 "박 대통령을 재판정에 나오게 한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반면 박 전 대통령은 무표정했습니다. 최씨에 대한 원망이 씻기지 않은 듯합니다. 구치소에서 구한 핀으로 머리카락을 올린 박 전 대통령은 직업을 묻자, "무직"이라고 했습니다. 미용사 없이 혼자 하다 보니 흐트러지는 건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법원으로 나올 때는 한동안 누렸던 '교통통제'가 없어 차량 사이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법정을 흔히 인생극장이라고 합니다. "문득 노래가 다하고 막이 내리면 곱고 미운 것이 어디 있는가. 바둑이 끝나 돌을 쓸어 넣으면 승부가 어디 있는가." 채근담 한 구절처럼 참 허망하다는 생각이 솟는 오늘 법정이었습니다. 과거형 리더십, 제왕적 대통령제가 시효를 다했다고 말하는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앵커칼럼 '417호 법정의 애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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