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뉴스9

[윤정호 앵커칼럼] 애국

등록 2017.06.07 20:27

수정 2017.06.07 20:47

추억의 빵이죠. '보름달'. 1970년대 봉제공장들이 밤늦도록 잔업을 시키면서 하나씩 나눠줬던 빵입니다. 여공들은 배고픈 고향의 부모형제 생각에 빵이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생긴 게 '빵 계(契)'입니다. 빵을 그날의 계꾼 한 명에게 몰아줘 집에 부친 겁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각성제 '타이밍'을 군것질하듯 삼켜가며 밤을 꼬박 새는 특근을 밥먹듯 했습니다.

소설가 신경숙이 일했던 구로공단의 친구는 원래 왼손잡이가 아니었습니다. 사탕을 하루 2만개씩 비닐로 싸느라 오른손 손가락이 마비돼버렸습니다. 치약 하나 사면 삼 년 쓰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1963년 젊은이들이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로 떠날 때 우리 국민소득은 69달러였습니다. 인도 다음으로 못살았습니다. 파독(派獨) 광부 모임 이름이 '글뤽 아우프(Gluck auf)'입니다. '행운을 빈다'는 뜻인데, 지하 1500미터, 섭씨 32도 막장에 들어가면서 나누던 인사말입니다.

독일에 온 박정희 대통령이 광부들을 찾았습니다. 애국가가 연주됐지만 광부들은 우느라 따라 부르지 못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나라가 못살아서 우리 젊은이들이 이 고생 하는 걸 보니 피눈물이 납니다. 우리만은 다음 세대에게 잘사는 나라를 물려줍시다"라고 말합니다. 박 대통령도 감정이 북받쳐 연설문을 끝까지 읽지 못했습니다. 광부·간호사 2만명이 부쳐 온 외화는 나라를 일으키는 종잣돈이 됐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에 청계천 여공, 파독 광부-간호사, 베트남 참전용사를 거명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애국하는 방법은 달랐지만, 그 모두가 애국자였습니다."

가난에 무릎 꿇지 않고 악착같이 일어서던 그 시대를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겉만 풍요로운 건 아닌지,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앵커칼럼 '애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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