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7

[종합뉴스 7] '그레이트 파더', 살인용의자 전락

등록 2017.10.08 19:20

[앵커]
여중생 살해 피의자인 이모씨는, 자신과 같은 희귀병을 가진 딸의 수술비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녀, ‘그레이트 파더’ 즉 ‘위대한 아버지’로 불렸습니다. 그 이면에 어떤 모습이 있었길래, 살인 피의자로 전락했는지 취재 기자와 좀 더 얘기 나눠 보겠습니다. 조덕현 기자 나와 있습니다. 우선 이씨가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 간략하게 좀 소개해 주시죠.

[기자]
네 이씨는 82년생 올해 35살입니다. 9살에 희귀암이 발병해 초등학교만 나왔고 이후 스시집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활해 왔습니다. 그리고 20살인 2002년, 당시 17살이던 부인 최모씨를 만나, 그 이듬해 8월 딸 이모양을 낳았습니다.

[앵커]
희귀병을 앓다 결혼을 하고 딸까지 얻었으니, 일생의 전환점이었겠군요.

[기자]
네, 딸 이양은 이씨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 됐습니다. 소중한 딸이 생후 6개월 만에 자신과 같은 병이 발병하면서 이씨 삶은 확 바뀌게 됩니다.

[앵커]
어떻게 바뀐 건가요?

[기자]
앞서 이 앵커께서 언급하신 '그레이트 파더'로서의 삶이 시작된 거죠. 이씨는 딸의 억대 수술비를 벌기 위해 국내는 물론 미국까지 모금활동을 하며 백방으로 뛰어다닙니다. 

[앵커]
지금 나오는 짱구 인형 사진 같은게 다 그 때 모금 활동 모습이군요?

[기자]
네 맞습니다. 딸 이양이 짱구를 워낙 좋아해 모금활동도 짱구 탈을 쓰고 했습니다. 세계에서 몇명 없는 희귀병에 아빠에 이어 어린 딸까지 고통스러워 한다는 소식에 언론과 시민들의 성원도 대단했습니다.

[앵커]
이 사진은 해외인거 같은데요?

[기자]
네, 이씨가 2009년 2월, 미국으로 가 모금활동하는 모습입니다. 이 당시 이씨는 무직에 암환자라, 불법 체류 위험으로 비자 발급이 불가능했는데,  이씨가 손수 미 대사관에 손 편지를 썼고, 이에 감동한 미 영사가 비자를 내주며 이씨를 '그레이트 파더'로 칭찬했다고 합니다.

[앵커]
눈물 겨운 부정, 이런 모습인데, 이런 성원이 있었으니 경제적으로 그리 힘들진 않았겠네요.

[기자]
풍족한 생활은 아니었던 걸로 보입니다. 2006년 이후 유명세를 타고 책까지 내면서 성원이 이어졌지만 딸에 들어가는 수술비가 10억원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2014년까지도 제발 도와달라는 글을 SNS에 올렸습니다. 

[앵커]
그런데 시신 옮길 때 썼다는 차를 보면 고가의 외제차던데.

[기자]
네 최근 생활은 또 그리 힘들진 않았던 거 같습니다. 집 두 채를 가진 부자다란 얘기도 있지만, 집은 중랑구 45평 집에 전세였고, 이씨 소유 집은 없는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차는 중고 2000만원 짜리이긴 하지만, 신차가 5500만원 짜리 2013년식 BMW SUV를 탔습니다. 

[앵커]
이씨에 영향을 준 주변인 얘기도 궁금합니다. 우선 이씨 부녀 도피를 도운 박모씨는 누군가요?

[기자]
네, 박모씨는 자동차 판매 관련 일을 하는 사람으로 알려졌는데, 아직 왜 시신 이송을 적극적으로 도왔는지는 수사 중인 상황입니다.

[앵커]
모금활동을 도왔다는 이씨 형은 어떤가요?

[기자]
네, 이씨 형은 이씨와 이씨 딸의 모금 인터넷 사이트를 관리한 인물입니다. 이씨가 체포된 뒤, 마치 알리바이를 조작하려는 듯 이씨의 유서 글을 올렸다가 갑자기 사이트를 폐쇄한 사람이기도 하고요. 경찰은 이씨 형이, 이씨의 많은 부분을 알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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