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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문화 권력의 추악한 민낯

등록 2018.02.28 21:46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이 틀어놓은 아름다운 이중창이 온 교도소에 울려 퍼집니다.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서 백작부인과 하녀가 부르는 '저녁 바람 부드럽게'라는 곡입니다.

'피가로의 결혼'은, 하녀에게 눈독을 들이는 백작을 하녀와 약혼자 피가로, 백작부인이 힘을 합쳐 혼내는 이야기입니다. 원작 희곡이 상연 금지를 당했을 정도로 권력에 대한 풍자가 넘쳐납니다.

'피가로의 결혼'이 지금도 각별하게 공감을 얻는 건, 힘센 자가 지위와 권력을 흉기처럼 들이대며 약자에게 성적 요구를 하는 구조적 상황입니다. 오페라는 통쾌한 응징으로 모두가 웃고 끝나지만, 현실에선 끝없는 분노와 혐오를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미투가 문화예술계로 번진 지 한 달이 됐습니다. 그 사이 용기 있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면서, 문학 연극 영화 사진 만화까지 온 예술계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자신이 지닌 문화 권력을 성폭력의 지렛대로 삼았던 인사들의 민얼굴도 잇따라 드러나고 있습니다. 권력과 억압이 성적 욕망과 결합하면 얼마나 추악해지는지 숨김없이 보여주는 얼굴들입니다.

집단 최면이라도 걸린 듯 모른 체 지내온 구성원들도 공범입니다. 피해자들은 또 얼마나 깊은 상처를 안은 채 버텨 왔는지 가늠조차 하기 힘듭니다.

"더러운 손을 20년이 다 되도록 지우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어느 연극배우의 고백이 귓가를 맴돕니다.

희곡 '피가로의 결혼'은 프랑스혁명을 태동시킨 작품으로 꼽힙니다. 나폴레옹도 "혁명의 출발점"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문화예술계에 들불처럼 번져 가는 미투 역시 혁명의 시작이라고 할 만합니다.

반세기 전 미국 시인 뮤리엘 루카이저의 시 한 구절로 맺습니다.

"한 여성이 자신의 삶에 대해 진실을 털어놓으면 세상은 터져버릴 것이다."

2월 28일 앵커의 시선은 '문화권력의 추악한 민낯'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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